을지로 오구반점-자부심 깃든 서울 한복판의 손맛
누군가 문화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음식점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늘상 그 일대를 지나다니면서도, 오구반점이 어떤 곳이라는 얘기를 듣기 전에는 서울 한복판에 아직도 옛날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신기한 음식점이라고 생각만 했을 뿐, 왜 신기한지 들어가서 확인해 볼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제서야 가보게 되었다, 왠지 유행에 뒤쳐진 사람과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한여름 어느 날의 오후 네 시, 아무도 없는 음식점 1층에서 짜장면과 군만두를 시켰다. 이 집 군만두에 대해서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왔던지라, 시키면서도 ‘만두가 있나요?’ 라고 물어보았다. 일단 짜장면은, 오랫동안 끓였던 듯 야채며 고기며 모든 건더기가 푹 익은데다가 국물은 흥건했는데 까맣기 보다는 갈색이 도는 것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듯 여느 짜장면들에 비해 기름기가 적고 개운한 느낌이었다. 개운한 짜장면이라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내왔을 때에 기름이 한겹 위에 떠 있는 짜장면들에 비하면 짜장이 거의 국물에 가까울 정로도 기름기가 적었다. 면은 딱히 인상적이라는 느낌은 없었지만 또 그렇다고 떨어지는 느낌도 없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인기가 많다는 군만두가 나왔는데, 군데군데 터진 옆구리며 전체적인 모양새가 그렇게 볼품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 입 먹어보니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간이 적당히 잘 맞는 가운데, 부추가 제법 들어간 속이며 만두피 할 것 없이 촉촉했다.
그러나 먹고 나니 기름이 접시 바닥에 흥건하게 고일 정도로 많아서, 만두의 촉촉함이 엄청난 양의 기름과 그 기름이 유발하는 잠재적인 동맥경화에 기댄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쨌거나 만두의 맛은 가끔 동맥경화를 감수하고라도 먹을만큼 맛이 있었다. 혼자 들렀던 길이라서 요리는 먹을 수 없었지만, 그만큼 다음 발걸음에 대한 기대를 남겨놓고 음식점을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못 된 지지난주, 친구와 함께 다시 들렀다. 먹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그래봐야 두 사람이었으므로 많이 먹을 수 없었기에 일단 오향장육을 시키고 군만두를 또 시켰다.
일단 다시 시켜보았던 군만두는 지난 번의 것보다 모양새도 훨씬 나았고, 기름도 그렇게 흥건하지 않아서 늘 이 정도로 나온다면 목란의 군만두보다는 조금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깔끔하기로 치면 목란의 그것이 훨씬 낫고, 또 크기도 조금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피가 살짝 더 두꺼웠고, 조금 더 바삭거렸다.
이어서 오향장육이 나왔는데, 처음 접시를 받았을 때 가운데에 솟아오른 돼지고기를 보고서는, 그렇게 솟아오른 만큼 고기가 들어있겠다고 생각하고 좋아했는데, 한 겹을 들춰보니 그 밑은 곱게 채 썬 양배추여서 사실은 살짝 실망했다. 그러나 이름처럼 오향이 딱 적당한 수준으로 잘 배어있는, 기름기가 적은 돼지고기는 간이며 식감이 같이 나온 파와 오이, 그리고 삭힌 오리알과 짠슬을 모두 곁들여 함께 먹었을 때에 조화를 아주 잘 이룰 정도로 삶아 저며져있었다. 이만 오천원이었으니 가격으로는 요리급이지만, 양으로 보았을 때에는 두 세 사람 정도가 전채로 먹을 정도의 양이었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이 집의 간짜장에 부추가 섞여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나서 짜장면치고는 사치에 가까운 삼선 간짜장을 시켜서 마무리를 했는데, 지난 번에 물기가 흥건했던 그냥 짜장과는 달리 간짜장은 모든 재료가 살짝 아삭거릴 정도로 잘 볶여 있었고 사진에서 보았던 것처럼 부추가 섞여 있어 여느 간짜장의 양배추를 기반으로 한 단맛에 살짝 색다른 단맛이 덧입혀져 있었다. 새우와 오징어가 비교적 후하게 들어 있었는데, 새우는 탱글탱글 적당하게 익어 있던 반면, 오징어는 미끈거리지 않고 적당히 씹는 맛이 있어서 살짝 말린 오징어를 쓴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물어보지는 않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이름의 유래에 대한 얘기를 다룬 블로그를 만만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식맛이 변하거나 서비스가 나빠질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들 정도로 일하시는 분들의 태도는 덤덤하면서도 친절했다. 먹고 나서면서, 계산대에 앉아계셨던 주인 할아버지한테 정말 오랜만에 진짜 중국음식을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건네자 대뜸 ‘다른 데는 다 엉터리에요’ 라는 분위기의 얘기를 하셨던 것으로 보아 그렇게 서울 한복판에서 옛날 건물 그대로, 변하지 않는 맛을 추구한다는 데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배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옆자리 손님들이 먹던 난자완스는 그렇게 맛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깐풍기와 짬뽕을 먹어보기 위해서라도 곧 다시 들를 예정이다. 물론 군만두 다시 시키는 건 기본이고.
*전형적인 옛날 중국집 분위기로, 3층 건물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을테고… 금연이 아니므로 민감한 사람들은 염두에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주변 직장인들이 무리지어 들러 술과 식사를 동시에 해결하는 분위기니까.
# by bluexmas | 2009/08/31 18:50 | Taste | 트랙백 | 덧글(17)
여유있는 시간에 여유있게 드셨다니 감축드립니다..^^
다음 방학에는 부산의 중국집을 포스팅 하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