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린기의 ‘동강’ 방문기-유린기 85/잡채밥 65/공간 50

이러저러한 이유로 유린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정작 먹어본 적은 없어서 그 맛을 배우러 동부이촌동의 동강에 갔었다. 가게가 작다고 들어서 미리 예약을 했는데, 정말 그렇게 작은 줄은 몰라서 깜짝 놀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배달을 위주로 하는 동네 중국집이라면 모를까, 배달을 안하고 요리를 위주로 하는 식당 수준이라면 편안한 식사에 약간 문제가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다.

어쨌든, 이 날의 유린기. 처음 먹어보는 유린기라서 맛의 비교는 불가능한데, 겉은 바삭거리지만 속은 질길 정도로 신축성이 좋은 튀김옷이 인상적이어서 나중에 물어보았더니 감자전분이라고 했다. 집에서 감자전분으로 튀겨보니 비슷한 느낌이 나더라. 튀김도 좋았고 새콤달콤하지만 그리 센 느낌이 아닌 소스와 밑에 깔린 양상추와의 조화-단, 양상추는 뜨거운 튀김 밑에 오래 있으면 열에 익어서 풋내가 나기 시작하더라-도 좋았는데 결국 닭고기 튀긴 것과 불을 쓰지 않고 만든 소스, 그리고 썰기만 하면 되는 양상추의 조합이라는 걸 생각해보았을 때, 삼 만원은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 오천 원 정도면 딱 맞지 않을까 싶었다. 점수 따위 매기기를 좋아하는 인간은 아닌데, 굳이 해 보자면 85. 가격이 삼 만원이 아니었다면 90도 주었을 듯.

두 사람이 유린기 하나로는 모자라므로 시킨 잡채밥. 옆자리 사람들이 먹는 짬뽕이 맛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나도 일행도 짬뽕을 즐겨먹는 사람들은 아니어서, 볶음밥과 잡채밥 가운데에서 잠시 갈등하다가 시킨 건데, 별로 특색이 없었다. 일단 언제나 어디서나 먹던 잡채밥보다 당면이 조금 더 질겨서, 이런 당면의 상태가 이 잡채밥에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 집은 이 정도로만 당면을 조리하는지 조금 궁금했다. 그리고, 중식당에서의 밥+볶음의 식사종류는 보통 볶음 종류에 물기가 자작자작하게 있으므로 밥은 그 자체만 먹을 정도에 딱딱하다 싶을 정도로 밥알이 살아있게 짓는 것이 조화를 생각해서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이날의 밥은 물기가 꼭 집에서 밥만 먹기 위해 지은 정도였으므로 잡채와 함께 먹었을 때에 조금 물기가 많은 느낌이었다(생각해보니 쌀 자체의 질 역시 뭐 그다지 좋았다는 느낌은 없었던 듯). 또한 잡채에 설탕을 넣기는 하지만, 이 집의 단맛은 약간 앞으로 튀어나왔다고 느낄 정도였다. 사진은 보정을 그렇게 해서 전체적으로 각이 살아있는 느낌이지만, 전체적인 재료의 사용을 생각해 보았을때에 시각적으로는 별로 매력이 없는, 그리 식욕이 돌지 않는 모습이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새우가 든 잡채밥은 처음인 것 같다. 점수는 후하게 줘서 65.

이렇게 먹은 두 가지를 놓고 생각해보았을 때 유린기는 음식 자체로서 좋았지만, 가격이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었고, 잡채밥은 실망이어서 식사종류를 추천해달라고 물어보았을 때 다 잘 나온다고 말씀해주신 분의 얘기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어야 할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일하시는 분들이 친절하고 또 매끄럽게 반찬도 더 가져다 주시고, 응대도 아주 잘 해 주셨지만 위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너무나도 좁은 이 가게의 공간은 태생적인 한계라고 생각했다. 내가 저녁을 먹을 때에는 아기를 데리고 온 가족이 있었는데, 공간이 너무 좁다 보니 아이가 울고 보채기를 계속하자 편안함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음식의 수준이 조금 느긋하게 즐기는 정도의 질을 표방하는 식당이라면, 어쨌거나 그 공간 역시 적당히 느긋하게 즐길 여건이 되어야 전체적으로 격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강은 인테리어마저 요리집을 표방하여 깔끔하고 분위기 있게 꾸며놓았지만 공간은 정말 너무 좁았다. 그래서 공간은 50… 음식의 성격과 공간만을 놓고 보았을 때 화장실도 건물의 것을 빌려 써야만 하는 것을 감안했는데, 그나마도 인테리어를 신경써서 하지 않으셨다면 45 이하였을지도. 어쨌든, 유린기는 괜찮았지만 식사는 별로인데다가 굳이 찾아가야만 하는 위치나 공간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에, 좋은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부러 찾아가서 먹게 될 것 같지는 않다.

 by bluexmas | 2009/08/25 10:53 | Tast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at 2009/08/27 17:5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28 05:37

저는 가끔 이런 식의 음식 관련 글을 쓰기가 두려워요. 사람들은 다 맛있다고들 하는데, 막상 저는 먹어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가격에 대해서는 조금 너그러워질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 집은 그렇게 음식 즐기기 좋은 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삼만원쯤 되는 음식이라면 조금 더 편안한 공간에서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을까요? 직접 만들어보고 나서는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니까요. 물론, 저보다 더 맛있게 만들겠지만 공정 자체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것을.

저는 Lodge사의 무쇠 프라이팬이랑 더치 오븐이 몇 개 있는데, 이 프라이팬으로 튀김하면 정말 잘 되더라구요. 가격도 싸고…. 저는 날이 서늘해지면 하루 종일 걸었으면 좋겠어요.

 Commented by 펠로우 at 2009/08/28 23:27 

이런건 뭐.. 비싸고 맛도 없는데가 많으니, 일단 가격과 맛 중 한가지라도 만족시키는 곳이면 인기를 얻는거겠죠..[동강]뿐만 아니라 이촌동쪽 식당들이 대체로 그렇더군요~

전 몇년전 후배 사주려고 연남동[매화]에서 3만5천원대의 깐풍기를 시켰다가, 닭고기라곤 거의 들지않은 엉터리 음식에 절망한 적 있습니다.. 그런데보단 양반이겠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30 15:08

깐풍기가 3만 5천원이면 맛있어도 좀 사기군요. 하긴 그래도 맛 자체가 없지는 않았으니까요. 동강 한 집 건너에도 중국집이 있던데 그 집은 또 어떤가 궁금해지더군요. 역시 너무 좁아서 굳이 갈 것 같지는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