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빈에게 바치는 디저트(2)-짝퉁 파이브 우유 푸딩

바닐라 빈에게 바치는 디저트, 그 두 번째 시리즈는 우유 푸딩.

소문에, 서울 모처에 있는 큰 빵 회사에서 차린 카페의 우유 푸딩이 그렇게 대단하다는 얘기가 오산 시골 구석까지 솔솔 흘러 들어와서 직접 찾아가 맛을 보고 싶었지만 이 더운 여름에 먼길 떠나기가 어찌나 번거로운지… 그래서 카페 나들이는 찬 바람이 부는 가을까지 미루기로 하고, 대신 거기에 본인도 아니고 본인의 아는 사람이 사서 먹고는 그 병만 자기에게 주었다는 사람에게 굽신굽신 사정해서 병을 얻어다가 대강 흉내만 낸 푸딩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은, 그 카페에게 바치는 의미로다가 ‘짝퉁 파이브’ 우유 푸딩. 그나마 병이 진짜니까 짝퉁 파이브나마 될 수 있는 것이지, 그것도 아니면 이건 그냥 이름 없는 우유 푸딩일 것이다. 뭐 ‘오산 삼거리’ 우유 푸딩 정도로 이름 붙일 수는 있을까?

먹어보지 않았지만 우유 푸딩이 정확하게 유린기 같은 음식은 아니니까, 나름 생각해서 만드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사실 액체를 굳힌 디저트를 만드는 데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일단 녹말을 써서 굳히는 방법은 예전에 시도해 보았으나 그 녹말의 맛과 식감이 별로였으므로 제꼈고, 그 다음에는 젤라틴을 써서 굳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으나 그건 결국 우유 젤리가 될 뿐, 정확히 푸딩이 되는 것도 아닌데다가 특유의 보들보들한 식감이 안 날테니 역시 제끼고 결국 처음 생각했던 계란 노른자를 써서 만들게 되었다. 마침 무엇인가를 만들다가 남은 노른자가 냉장고에 좀 있기도 했고(사실 처음부터 계란 생각을 당연히 했지만, 열량을 생각하니 계란을 쓰고 싶지 않았다). 파는 우유푸딩의 색을 보니, 노란 것이 분명히 계란을 쓴 것 같았으니 이 선택은 그다지 재고의 여지도 없었다.

그러므로, 사실 이 디저트는 커스터드인 셈. 요즘 들여다보고 있는 책들 가운데에 음식의 기본 재료를 비율화하여 기억과 조리를 쉽게 하는 요리책이 있는데, 이 책을 참고하니 틀에서 꺼내 접시에 담아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굳기를 가진 커스터드를 만들려면 액체와 계란의 비율을 2:1로 잡으면 된다고 한다. 물론 이 책은 냉장고에 있는 노른자를 되는 대로 쓴 다음에 들여다 본 것이니 이 푸딩과는 사실 별 상관이 없다. 책에서는 덧붙이기를, 계란 하나면 3/4컵의 액체를 굳힐 수 있지만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틀에서 꺼낼 수 있는 커스터드를 위해서라면 2:1의 비율을 지키면 된다고.

보통 커스터드는 물이 담긴 팬에 넣고 오븐에서 굽기 마련인데, 얻어온 유리병이 오븐에서도 버틸 수 있는 것인지 확신이 없어서 그냥 찜기에 담아 냄비에 물을 올려 쪘다. 물이 끓고 10분 정도만에 굳었고, 식혔다가 가지고 있던 레몬 카라멜 소스를 위에 살짝 얹었다. 역시나 단맛이 압도적이고 계란이나 우유의 지방이 느끼할 수 있으므로 산을 곁들여주는 것이 좋다. 파는 건 바닥에 무엇인가를 깔아 놓은 것 같던데, 생각하기로는 위에 얹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어쨌거나 재료의 비율은 우유 두 컵에 설탕 1/3컵 정도, 그리고 계란 노른자 세 개 분량이었다.

몇 주 전엔가 방산 시장에 가서 보니 이런 종류의 병도 팔기는 하던데, 여기에 쓴 병의 1.5배 정도 되는, 그러나 별로 크지 않은 병을 무려 이천 오백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고 있었다. 오븐에 써도 되는지 알 수 없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병을 그렇게 비싸게 파는 데에 굳이 맞장구 춰 줄 필요 없으니 굳이 병에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처럼 주변 사람에게 굽신거려 한 두 개쯤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재료값도 얼마 들지 않으니, 굳이 병 다섯 갠가 여섯 개를 도로 가져가 하나를 더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세 개쯤 만들어 주겠다고 거래를 하면 되지 않을까?

 by bluexmas | 2009/08/14 10:11 | Taste | 트랙백 | 덧글(24)

 Commented by delicious feelings at 2009/08/14 10:18 

흠~먹어보고싶은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15 01:38

그러시군요^^ 그러나 제가 혼자 다 먹으려구요^^ 어차피 저 아니면 먹을 사람도 없구요.

 Commented by 점장님 at 2009/08/14 10:26 

개인적으로 우유푸딩 (마카오산이건 북해도산이건) 좀 느끼하다고 생각해요 ㅋㅋ

하나 이상은 못 먹죠. 하지만 소스에 레몬이 들어있다니 맛있을 것 같네요

생강향이 좀 나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제가 좋은 가격에 품질 좋은 유리병을 파는 쇼핑몰을 아는데..알려드려요? 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15 01:43

북해도산은 그렇다 쳐도, 마카오산 우유푸딩이 있는지는 몰랐어요. 마카오에는 뭐가 유명한지도 잘 몰라서요… 저도 오늘 저 병에 든 거 말고 다른 그릇에 든 거 먹었는데, 카라멜 소스 없이는 느끼하더라구요. 레몬껍질과 즙에 살짝 쓴 맛이 도는데, 그 맛이 느끼함을 그래도 잘 잡아주는 느낌이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생강도 정말 좋은 조합일거에요. 김영모씨 책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는 커스터드에 생강을 넣어서 크림 브륄레 만드는 레시피가 나오거든요. 우유를 살짝 덥혀 생강을 넣고 한 30분 정도 두면 우유에 생강향이 스며드니까, 그걸로 만들면 되겠죠. 다음번에 만들어봐야겠어요.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08/14 10:46 

병보다 수제 푸딩이 탐나네요~ ^^; 사진으로는 안보이지만 바닐라빈이 콕콕 박혀있을꺼같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15 01:43

최대한 당겨서 찍었는데도 바닐라 빈은 잘 안 찍혔네요. 어째 저는 병이 더 좋아요-_-;;;;

 Commented by 유우롱 at 2009/08/14 11:09 

저 푸딩병이 방산시장에서 작년에 800원이었는데 저번주에 가니 천원이 되었더군요;; 아무리 대량구매한다고 쳐도 도대체 원가에서 재료보다 병 값이 더 들어갈 듯한 어이없는 가격이;;

푸딩 맛있겠어요 ㅎㅎ

그냥 계란(커스타드)만 쓰신건가요? 한천이나 젤라틴이 전혀 안들어가고요? 전 계란만 사용했더니 자꾸 계란찜 같아져서 너무 슬퍼요ㅠㅠㅠ 그나저나 오산삼거리 아놔 ㅋㅋㅋ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15 01:50

정말 재료보다 병 값이 더 들어갈 것 같네요. 병맛인데요?-_-;;;

한천이나 젤라틴은 사실 계란이 들어가면 들어갈 필요가 없는데, 대량생산하게 되면 원료 값을 아끼느라고 뭐라고 다른 재료를 넣어서 굳히지 않을까 싶네요. 계란만으로 만들면 온도에 정말 민감하더라구요. 잘못 만들면 계란찜이라서…

참, 커스터드 만든 다음에 체로 잘 걸러주면 그래도 한결 낫더라구요. 노른자는 아무래도 좀 멍울이잘 생기는 것 같아서요.

 Commented by 제이 at 2009/08/14 12:56 

-_-;;;

이런 이쁜냥반~!!!! 대체 못 만드는게 무엇인가요~ 푸딩러버는 그저 눈물(침-_-;;)만 주룩주룩 흘립니다. 제가 병 구해올께요 ㅎㅎㅎㅎㅎㅎ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15 01:53

아니 뭐 이런 푸딩은 그렇게 만들기 어렵지도 않아요T_T 저는 사실 푸딩보다는 젤리를 훨씬 좋아하거든요. 젤리도 한 번 만들어야 할 듯…

 Commented by 조신한튜나 at 2009/08/14 15:39 

아주 예~~~전에 서울우유에서 푸딩을 냈었는데 그게 너무 맛없었어요..단종되어야 할 맛.

두 번 째로 먹었던 자작 푸딩은 단 계란 찌무ㅜㅜㅜ

왠지 bluexmas님이 만드는 푸딩이라면 인기있는 패@의 푸딩보다 맛있을 것 같네요 흐흐흐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15 01:54

가끔 극악스러운 괴식이 나오는 걸 보면 대체 월급받고 저런 걸 만드는 사람들은 뭘까 부러울 때도 있죠. 제가 만든 푸딩도 저는 좋아라하지만 어쩌면 그냥 계란 찜일지도 몰라요T_T

아무련 큰 회사에서 만드는 게 더 맛있지 않을까요? 나름 노하우도 있고…

 Commented by 미치루 at 2009/08/14 16:34 

전 오븐에 구워봤는데 잘 버티더라구요. 근데 어떻게해도 기포가 생겨버려서ㅠㅠㅠㅠㅠㅠ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15 01:55

블로그에서 사진 봤는데, 기포가 왜 생길까요? 다음 번에는 물을 넣고 구우시거나, 커스터드를 잘 저어서 공기를 한 번 빼 보세요. 제가 만든 건 기포가 없었거든요…

 Commented by 아이하라 at 2009/08/14 19:51 

맞아여 ㅋㅋ

크리스마스님이 만드신 푸딩이 패션5 푸딩보다 더 맛있을 거 같네여2 ㅋㅋㅋㅋㅋㅋㅋㅋ

위에 색깔도 너무 이뻐요 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15 01:56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저 개민망할 따름이에요 T_T 위 카라멜 소스의 색은 그냥 사진발이죠 뭐-_-;;;

 Commented by zizi at 2009/08/14 20:53 

그 병, 170~180까지는 견딘다고 하네요. 이제는 푸딩까지~

진짜 나중에 가게 하셔도 될 것 같아요. 그냥 혼자 드시게 하기는(-.-) 솜씨가 아까워서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15 01:56

그럼 오븐에서 충분히 구울 수 있겠네요. 진짜 패@파이브에서는 어떻게 만들까요? 궁금…

가게는 너무 힘들어서 절대로 할 수가 없을거에요. 대량 생산은 또 전혀 다른 얘기거든요.

 Commented by xmaskid at 2009/08/14 23:05 

어짜피 오븐에서도 낮은 온도에서 중탕하는거라 오븐에 쓰셔도 될거에요..(사실 제가 패*파이브병을 재활용해서 푸딩을 만들었기때문에…-_-) 밑에 깔린건 캬라멜이라 그냥 캬라멜 시럽 만들어서 바닥에 부어주면 되는것 같고…근데 제가 만든건 온도가 조금 높았던지 푸딩이 아니라 달고 맨숭맨숭한 계란찜이 되어버려서 다 버렸다는…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15 01:57

저랑 똑같이 병만 재활용해서 만드셨군요 T_T 저는 귀찮아서 카라멜을 그냥 위에 부어버렸어요.

아 제가 만든 것도 계란찜 아닌가 몰라요. 크림을 좀 섞으시면 감촉이 한결 더 나아질거에요~

 Commented at 2009/08/14 23:3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15 01:59

솔직히 안 들어갈 것 같은데 그냥 연출하려고 놓은거에요^^ 어떻게 병에서 꺼내 먹을까 지금 고민중이에요 -_-;;;;

 Commented by Claire at 2009/08/15 01:23 

푸딩도 좋고 커스터드도 좋아요 ^^

직접 만드신 수제 푸딩이라니 근사하네요

병 대여섯개라면 그나마 양반인 셈인데..

제 기억으로는 저 곳의 푸딩은 12개의 병을 가져가야

하나로 바꾸어준다 했던 것 같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8/15 02:00

앗 제가 들었을 때에는 병 여섯개로 들었는데, 열 두개면 거의 사만원어치 먹어야 되네요.

뭐 자리값도 있고 하겠지만, 재료비 생각해서 삼천원 넘으면 좀 비싸다는 생각이에요. 사실 아무 것도 아니거든요. 제 얘기는, 뭔가 특별할 건 없는 디저트라는 얘기죠. 레시피나 맛이나… 없던 음식을 만들어 낸 건 더더욱 아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