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 입주잔치
조금 전, 눈을 뜨자마자 나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스피커의 뚜껑을 열고 전선을 끊어버렸다.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쯤 끊어버릴까? 예상치 않은 시간에 터져 나와서 내가 즐기는 오후의 정적 따위를 깨는 그 ‘안내방송’ 에서 실제로 내가 안내 받아야 할 정보는 없으니까. 게다가 그 기계여자의 목소리라니…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아, 세들어 사는 집인데 이래도 돼? 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여덟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계속되는, 너무나도 친절한 안내방송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나는 안 바라지만 상당히 많은 이 단지의 주민이 바라는 것으로 보이는 입주잔치 날이다. 발 아래 공원으로 초등학교 운동회 때의 차림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만국기며 천막 따위가 보인다. 그래, 뭐 지들이 원해서 입주잔치 따위 하는거야 그렇다 치자. 아침 열 시 부터 오후 다섯시 까지 한다길래 그럼 늦잠은 못 자겠네, 라고 생각하고 어제 일찍 잠을 청하기 까지 했다. 열 시부터 시끄러울 거라면 그 때 까지라도 자면 충분할 것 같아서.
그러나 여덟 시 부터 계속되는 그놈의 안내방송은 정말… 그래도 잠은 자야 될 것 아냐? 니들이 그렇게 원하는 입주잔치 하는 시간까지는? 어쨌든 스피커에 연결되어 있는 두 선 가운데 하나를 가위로 잘라버렸다. 속이 다 시원하다. 그래 뭐, 살다 보면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하지. 그래야 내가 제대로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무엇인가 이루면서… 뭐 그게 인지상정이라고 해도 그렇지, 자기들이 피땀같은 돈 모아서 괜찮은 아파트 사 놓고 그걸로도 스스로 인정할 수가 없어서 이 사람들은 시장이며 뭐 높은 사람들 불러다가 한마디라도 들어야 자기들이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건가보다. 야, 나는 시장님이 입주잔치에 와서 축하해준 아파트에 살거든? 시장이든 누구든 오지 않더라도, 이 아파트는 잘 계획되고, 잘 지어진 괜찮은 아파트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스스로에게 얘기해주지 못한다. 언제나 외부의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 무리 안에 섞여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되는 불안한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 당신도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파악하지 못하지? 남들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쯧.
# by bluexmas | 2009/06/27 09:43 | Life | 트랙백 | 덧글(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