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또라이
일요일엔 트레이너들이 한 명도 없었다. 골프 가르치는 사람들이 번갈아서 체육관을 지키더라. 뭐, 젊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렇게 일해서 힘들어서 어째… 아예 사무실에 매트리스 가져다 놓고 자기들끼리 칼잠 비슷하게 자면서 아침 여섯시 부터 밤 열 한 시 까지 체육관을 지킨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라 얘기하지 뭐하지만, 그렇게 계속 여기 붙어 있어서 여자친구랑 헤어졌다는 트레이너도 있더라. 괜찮은 친구던데, 같이 안 놀아준다고 헤어지는 건 대체 뭐냐? 어쨌든 나는 늘, 하루에 스무 시간씩 일하시면 떼부자 되시겠어요, 뭐 이런 농담을 한다.
그렇게 트레이너들이 없어서 그랬나? 나이가 나보다 열 살은 더 먹어 보이는 부부가 들어왔는데, 여자는 운동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었고, 남자는 대강 후줄근한 반바지와 티셔츠에 방문객용 슬리퍼를 신었더라. 뭐 그래서 방문객인가봐, 했는데 이 남자가 글쎄 슬리퍼를 신은 채로 트레드밀에 올라간다. 어라? 그리고는 걷기 시작한다. 나는 내가 그런 걸 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더니 그 남자, 곧 내려서길래 그럼 그렇지, 슬리퍼 신고 트레드밀 쓰겠어? 라고 생각했더니 곧 양말을 벗고 맨발로 다시 올라선다, 그리고 걷더라. 으음…
가끔 슬리퍼 신고 웨이트 하고 턱걸이 하는 사람들 보고 참, 저래서 뭐가 되려고… 하는 생각을 종종 했었구만, 맨발로 트레드밀에 올라가는 작태를 보여주는 건 거의 신공에 가까운 또라이짓이 아닌가 싶다. 자기 집에서라면 맨발로 하든 물구나무를 서서 하든 뭐 내가 알바겠어? 그러나 여러 사람 부대끼면서 같이 쓰는 장소에서, 또 사고의 위험도 있는데 떡허니 맨발로 트레드밀에 올라선다는 걸 나는 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뭐 운동이 되겠냐? 따위까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건 이 상황에서 사치일테고. 그러다가 사고 나면 또 지랄지랄 해가면서 치료비 달라 어쩌라 난리난리치겠지. 보면 그런 인간들이 더 하더라, 자기 책임이더라도 일단 우기고 보는 거.
뭐 어디 그런 사람들 뿐이겠어? 자기만 들으라고 설치해 놓은 텔레비젼에 이어폰 줄 연결 열심히 해서 트레드밀에 달아줬더니 그걸 굳이 빼고 텔레비젼을 봐서 열 대 가운데 한 두 대는 누구라도 들을 수 있게 강호동의 웃음소리를 아주 크게 들려준다. 패밀리가 떴다 따위는 집에서 보라니까? 난 그 따위 예능 프로를 보면 텔레비젼을 부숴버리고 싶다. 내가 병신들 다리 찢는 걸 왜 텔레비젼에서 봐야 돼, 좋고 유익한 프로그램들 넘쳐나지는 않아도 종종 있는데? 급기야 트레이너들이 ‘이어폰으로만 들으시기 바랍니다’ 라고 써서 붙여 놓았음에도 15 포인트면 너무 작은지, 언제나 한 두 대는 케이블이 뽑혀 있다. 애를 무릎에 앉혀놓고 팔운동 기구 움직이는 엄마도 봤는데, 벌써 그 며칠 전에 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애들 출입을 금지한다고 써 붙여 놓았더라. 우리말 모르나봐, 애들이 그냥 와서 돌아다니는 것도 모자라서 무릎에 애를 앉히고 운동기구를 쓰다니. 아, 작지만 체육관에는 아주 훌륭한 애들 놀이방도 있다. 미끄럼틀도 있고. 이런 일들이 시시각각 벌어져도 트레이너들은 또 고용된 직원에 불과하니까 그냥 좋게 한 두 번 말할 뿐이지, 회원들이 짜증낼까봐 제대로 말도 못한다. 그리고 오늘은 운동하다 말고 화장실에 갔더니 누가 소변기에 껌을 뱉어놨더라. 트레이너들이 청소분가? 생활 또라이들 많다, 정말 많다. 이런게 안 지켜 지는데 뭐 사람들은 후퇴한 민주화 따위를 말하는 거냐, 부끄럽게?
# by bluexmas | 2009/06/24 03:05 | Life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