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 & Coffee(1)- 커피 무식쟁이 모카포트 사용기
짐을 부치기 며칠 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무엇인가를 사러 타겟에 들렀다가 모카포트와 프렌치 프레스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뭔가 부엌용품을 사러 갔었겠지. 어쨌든 그저 물을 뜨겁게 데우는 것보다 조금 더 나은 성능을 자랑할 뿐인미스터 커피의 10불 짜리 커피 메이커는 도저히 바다를 건널 자격이 안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던지라, 둘 가운데 하나를 데려갈 생각으로 진열대 앞에서 한 20분을 고민했다. 가격은, 모카포트가 20불, 프렌치 프레스가 15불쯤? 지금 생각하면, 이 쫌생아 합쳐서 35불인데 그냥 두 개 다 사버리지 그랬냐? 라며 본인의 쫌스러움에 개탄을 금치 못하지만, 그 때는 정말 숨 쉬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밥 먹는 것 정도에는 충분히 죄책감을 느낄만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두 개 다 사고 싶었지만,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니까, 뽑으면 물 섞어서 아메리카노 쯤은 만들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래며 그냥 모카포트만을 사들고 왔다. 그리고 며칠 전에 시험을 해 보았다.
일단 커피는, 없는 줄 알고 그 동네를 간 김에 허형만의 압구정커피에 들러 아무것도 모르니까 겸손하게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또 얌전하게,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 뽑아 마시려고 그러는데요 라고 말씀드리고 에스프레소 블렌드라는 녀석을 100그램 담아왔다. 가격은 육천원. 커피갈이에 대한 얘기를 콩 담아주신 분과 잠깐 하다 보니 짐작하기로 그 허형만이라고 생각되는 남자분이 와서 날 달린 갈이로 갈때는 고르게 갈리게 흔들어줘라, 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아, 그렇구나. 또 한 수 배웠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 배움의 겸허한 마음을 고이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 압구정동에서 꽤 먼데도 그 겸허한 마음이 도착할 때 까지 유지가 되더라, 신기하게.
그리고 마침 가지고 있는 어떤 책(이 책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을 참고해 콩 갈은 것 30그램에 물 360 밀리리터를 계량해서 넣고, 가스불 위에 올렸다. 나는 뭐 워낙 잘 모르기는 하지만 콩 30그램에 물 360 밀리리터라면 어째 에스프레소가 아닌 콩 달인 한약이 나올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불행하게도 예감이 적중하여 내가 얻은 것은 크레마도 없는, 콩기름-이야, 정말 커피콩 반들반들하게 볶아졌더라, 기름기가 좌르르르…-이 위에 뜬 한약이 추출되었다.
무식하지만 그래도 늘 먹던게 에스프레소라서 좀 걸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진하면서도 그렇게 걸쭉하지는 않았고, 대체 언제 끼워팔기의 바가지를 써서 사온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던킨도너츠의 커피잔(그러니까 나에게도 던킨의 머핀을 먹던 시절이 있었구나…-_-;;;; 그런데 이 잔 엄청 웃긴게, 저 손잡이 구멍에 손가락을 넣을 수가 없다. 내 손가락은 못생겼어도 그렇게 두껍지는 않는데-)에 3/4쯤 채워서 마시니 3일 못잔 잠이 확 달아나서 더 이상 마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머지는 물을 타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냉커피처럼 마셨다. 또 실험을 해 볼 생각인데, 저 비율을 지켜 투입하면 양이 적지만 진하기는 비슷한 에스프레소를 뽑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책에 의하면 크레마가 생긴다는데, 정말? 잘은 모르지만 이 모카포트도 압력차를 이용한 추출이 원리이기는 하지만, 크레마가 생길 만큼 고압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조금 더 인터넷이라도 뒤져 공부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커피 한 잔 마시기도 그렇게 쉽지는 않구나.
# by bluexmas | 2009/06/19 09:45 | Taste | 트랙백 | 덧글(13)
모카포트 사용이나 물 분량 등에 대해서는 카페 뮤제오에서 찾아보시면 많이 나올겁니다. 모카포트 사용법도 사진을 곁들여 (동영상도 있을거예요) 자세히 나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