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들어왔다
익숙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사치일까. 낯선 공간으로 이사왔고, 아무 것도 없는 그 공간의 아무 것도 없음에 익숙해질 무렵 짐이 들어오니 이 공간은 또 너무 낯선 무엇인가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게다가 짐을 싸서 내보낸지 두 달이나 지나고 나자 대체 내가 뭘 가지고 있었는지, 또 그걸 어떻게 쌌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단절감이라고나 할까. 또 어쩌면 하나하나 풀면서 ‘아니, 내가 대체 이건 왜 가지고 온거지!’ 라며 좌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아마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마저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까.
아직 열어본 게 별로 없어서 모르겠지만, 짐은 큰 탈 없이 멀쩡하게 온 것 같다. 이러다가 텔레비젼을 틀었는데 안 나온다거나 하면 낭패… 고장나서 못 보게 되는 건 그렇데 치더라도, 그 돈을 주고 가져올 필요가 없었을테니까.
어쨌든, 짐이 오고 나니까 또 마음이 급해진다. 짐이 없었던 지난 두 달을 돌아보면 또 없다는 핑게로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정말 잘도 뻔뻔스럽게 놀았던 것 같다. 이제는 머릿 속에서만 열심히 굴리고 있었던 말도 안 되는 계획들을 실행에 옮길 때도 되었다.
저녁 먹을 때쯤 집에 들어와 사진을 찍었다. 사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이렇게 찍힌 것보다 훨씬 더 밝았는데, 사진은 이렇게 어둡게 찍혔다. 무엇인가를 통해서 보면 언제나 어둡게 보인다. 그 무엇인가는 언제나 정말 ‘무엇인가’ 는 아니다. 사진을 찍고는 침대에 누워 새벽까지 잤다.
# by bluexmas | 2009/06/05 05:51 | Life | 트랙백 | 덧글(10)
정리 잘 하세요 ^^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게 전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