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명의 우주
단지 내가 나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만날 수 없거나 또는 감히 만날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가는 현실이 목을 죄어올때면, 이렇게 목이 죄어오다가 숨이 끊어지고 나면 누군가 뼈가루 따위로 나를 가볍게 만들어서 가명의 우주에 날려줬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게 된다. 어차피 나는 뼈가루, 먼지를 닮은 뼈가루가 되었으니 형체는 벌써 없어졌을테고, 세계의 속성이 가명이라면 형체와는 또 무관하게 내가 누군지 다들 알 수가 없을테지. 그럼 내가 나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만날 수 없었거나, 또는 감히 만날 생각조차 못했던 사람들의 손을 둥글게 둥글게 잡고, 기명의 세계에서는 근친상간처럼 입에 담을, 아니 의식의 물 위로 떠올려 볼 수 조차 없었던 봄의 노래를 다 같이 불러보는거지. 당신은 베이스, 나는 테너, 그리고 언제였는지도 모를 순간의 순간에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여자 C는 소프라노. 거기 소프라노, 목소리 좀 크게 내주세요. 어차피 당신은 이 가명의 우주에서 여자 C에 불과하니까 괜찮다구. 이곳에서 부끄러움은 미덕이 아니라니까. 우리는 벌써 부끄러움 따위는 느끼지 못하는 먼지가 되어버렸는걸.
# by bluexmas | 2009/05/18 22:32 | —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