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이 그리워지는 밤
그러니까 뭐 말하자면 그렇고 그런 블랙홀이 있는거지, 내가 누군지도 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해주는 그런 블랙홀. 모든 걸 망각하게 도와주는 가운데 타인의 체온만 느끼도록 도와주는 그런 블랙홀.
오늘 같은 밤은 정말이지 내가 뭐 해 쳐먹는 인간인지 기억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백지가 된 기억으로 길거리에 나가 아무나 붙들고, 이봐요 내 삶이 이 모양 이 꼴인데 어디 한 번 얘기나 들어보실라우? 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도 없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술 사기가 싫고, 또 여자면 내가 관심있어 하는 줄로 착각할까봐서.
모든 나보다 마음 편하게 살 줄 아는 사람들이 눈 말똥말똥하게 뜨고 이 토요일 저녁을 늦게까지 지키고 있는 가운데, 마음이 불편한 나는 일찍 퇴청… 누군가 이유를 굳이 물어본다면 ‘증점제랑 유화제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 있는 씨발 투게더를 너무 많이 먹고 나니까 마음이 불편해졌어요. 엄마 아빠도 함께 투게더, 라고 누군가 그랬는데 난 오늘 밤 어머니 아버지도 자발적으로 물리쳐놓고 혼자 이렇게 보내고 있거든.’
그러나 여태껏 아무도 증점제와 유화제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냐고 물어본 적도 없었다니까. 숙변의 켜켜에 껴 있는게 지금까지 먹고 또 먹은 증점제와 유화제의 찌거기인데도.
# by bluexmas | 2009/04/25 22:04 | —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