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다음 날(Fucking Nacho)
홀짝홀짝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그 홀짝홀짝 마셨을 때의 알딸딸한 기분을 즐기는 나를 미워하기 시작해서 술을 좀 그만 마시고 싶어지신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술을 홀짝홀짝 말고 벌컥벌컥 마셔서, 다음 날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고통을 마음껏 느껴 당분간 술을 마시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
어제는 그런 날이었다. 물론 술자리 자체가 괴로운 것은 아니었다. 딱 둘 있는 친구 가운데 한 녀석을 만나 그 회사 근처에서 1차로 한우님을 소주와 영접하고, 2차로 극악의 안주와 시원한 생맥주를 마셨다. 친구가 딱 둘이라니, 다른 친구들이 들으면 섭섭하지 않을까? 라고 누군가 궁금해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 둘 아니면 친구가 없다(물론 여기에서 친구라는 건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동갑내기). 이제 겉으로 ‘응, 우리는 친구’ 라고 말은 할 수 있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연락도 하지 않고 만나지도 않으니까.
어쨌든, 지난 몇 년 간 계속된 ‘혼자 조용히 집에서 술 마시기’의 수련에 힘입어 이젠 소주도 물처럼 느껴지고, 따라서 예전보다 더 많이 마실 수 있게는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에서 오산까지 돌아오는 그 멀고 먼 길이 안 힘들게 느껴질 정도의 초인은 아닌지라, 아침에 일어나서 어떻게 돌아왔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술이 올라있는 상황이었지만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대체 얼마나 더 가야 오산이냐, 라고 계속해서 역 안내 전광판을 들여다 보았던 기억은 어렴풋이 난다. 그만큼 돌아오는 길은 고통스러웠다. 친구 회사가 오목교 역 근처라서 신길까지 택시를 타고 와서 전철을 탔는데, 어딘지도 기억하지 못할 역에서 내려 한 번 토해 주시고, 다시 병점행 전철을 타고 병점에서 내려 오산 가는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또 한 번 토해 주시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마시고 또 다시 한 번 토해주신 후 뒤집힌 속의 평화를 얻었다. 기억에 그 어딘지도 모를 지하철 역에서 토하면서, 비몽사몽 간에 ‘아 오늘 한우님 영접했는데 그거 토하면 안 되는데, 제발…’ 이라고 속으로 빌었었다. 다행히 오랫만에 한우님을 영접하신 내 위장들이 주인의 깊은 뜻을 헤아렸는지, 1차에서 먹은 한우님은 모두 고이 소화시킨 뒤 2차에서 먹은 극악 안주와 맥주만을 액체 상태로 게워내었다. 게다가 주인에게 영양분-어쩌면 독소일지도-이 되지 못한 불쌍한 극악 안주와 맥주들도 주인이 스웨이드 신발을 신은 걸 헤아려 신발에 떨어지지 않고 전철 철로로 고이 낙하, 얼룩져도 지울 수 없는 신발의 상태로 양호해서 두 배로 기뻤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아침은 고통스럽다. 물론 속이 쓰리고 머리도 아프므로 육체적인 고통이 압도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밑자락에 깔린 정신적인 고통이 음주 다음 날 고통의 정수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늘 ‘대체 술에 취해서 어제 무슨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까’ 라는 걱정에 시달린다. 그건 다른 사람에게 보이거나 들려준 어떤 말이나 행동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손실일 수도 있다. 어제 대체 얼마를 택시 요금으로 낸지도, 또 얼마짜리 지폐를 주고 거스름 돈을 받았는지도 기억을 전혀 할 수 없는데 지갑 속의 현금이 모자라는 듯한 느낌에 오전 내내 시달렸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나는 차 바닥에 떨어진 만원짜리를 줍고 있었으니 어쩌면 돈을 거기에서 흘렸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온갖 카드나 신분증 따위는 그대로 있었다. 사실 술쳐먹고 돌아다녀도 뭔가 잊어버리거나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는 적은 거의 없는데, 성격이 그렇다 보니 언제나 아침에 일어나면 이렇게 고통스러워한다. 생각해보면 그건 거의 언제나 상실감이다. 아무 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는데 드는 상실감… 그렇다면 그건 상실감이 아니라 불안함인걸까. 언제 약점을 보여주기 싫어하니까 술을 마시면 그럴 것이라는 불안감, 아니면 그냥 조금 더 포괄적인, 삶 자체에 대한…?
어쨌든, 어제의 기억 가운데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2차 생맥주집에서의 극악 안주, ‘나초’에 대한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차림표’ 에 나초라고 떡허니 이름을 단 무엇인가가 있었고, 친구가 그걸 주문했다. 가격은 무려 만 삼천원. 그런데 나온 것은 칩 한 줌을 접시에 깔아놓고 뭔지도 모를 치즈와 양파 쪼가리를 뿌리고 거기에 무려 케찹을 끼얹은, 진짜 나초를 모욕해서 죽이고서는 암매장한 뒤, 일주일 지나 다시 그걸 파헤쳐 다시 토막을 쳐서 그 시체를 까마귀 밥이 되게 내동댕이 쳐 버리는 듯한 격의 쓰레기가… 게다가 더 어이없던 것은 그 가운데에 자기들 딴에는 구웠다고 생각했을, 말라 비틀어진 찐 감자 따위마저 떡허니 자리잡고 있었다고, 그것도 칩 몇 장을 꽂고 사워 크림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하얀 무엇인가를 한 숟가락 정도 얹은 자태로… 아침에 일어나서 속에서 올라오는 그 싸구려 케찹 냄새에 정말 고통스러웠다. 다 만드는데 천 삼백원이면 충분했을 음식도 아닌 무엇인가를 내놓고 만 삼천원을 받는 건 정말 그 이름을 빌어온 음식 자체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지만, 그런 걸 사람들에게 먹으라고 파는 그 마음 자세는 정말… 돈 주면서 먹어달라고 해도 시원찮을 쓰레기였는데.
그러고 보니 만 삼천원이면 보통 중국집에서 탕수육 한 접시 먹을 돈 아닌가? 친구에게 다음에는 중국집에서 탕수육에 맥주 시켜서 2차 가자고 해야 되겠다.
# by bluexmas | 2009/04/22 22:35 | Life | 트랙백 | 덧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