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가면
당신들이 핍박하는 사회가 그 넘쳐나는 핍박 가운데에서도 그렇게 건전하지 않다고 생각들을 하셨는지, 나라를 다스리시던 분들께서 음반마다 건전가요라는 걸 넣으라고 강요하던 시절이 있었다. 음반에 실린 가수의 노래와는 전혀 상관없어서 생뚱맞다는 형용사 정도로는 그 어이없는 안 어울림을 표현할 수 없었던 노래들, 그래도 그 가운데 참을성을 가지고 한 번 정도는 들어줄 수 있었던 노래도 있었다. ‘시장에 가면’ 이라고.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좀 어려운 오리역의 단골 미장원을 가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가 만두국과 팥칼국수, 빈대떡을 먹고는 장에 들렀다. 딸이 없는 우리 집에서 어머니의 장보기를 돕는 건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아파트 단지 앞 상가에 있는 어머니의 학원이 끝날때 쯤 들러 무거운 걸 같이 들어주는 정도의 역할이었지만, 더 나이를 먹고 부터는 끼니나 반찬에 대한 얘기를 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나는 집에 있는 책들을 읽어제끼다 못해 어머니가 식단을 다양화 하시려고 들여놓았던 요리책마저 읽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고, 그걸 바탕으로 장을 같이 볼 때면 해 먹어 본 적이 없는 반찬을 책에서 기억해내어 제시하곤 했다.
오늘의 장보기는 1차로 오산 시내에 있는 재래시장에서 이루어졌다. 수원에 살았을 때에는 시내에 있는 지동시장에 잘 가곤 했는데, 아직까지도 한 삼사십년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지동순내가 큰 기름솥을 걸어놓고 그 자리에서 튀기는, 당근이 든 어묵을 얻어 먹곤 했었다. 그때의 기억이 언제나 남아 있다 보니 재래시장에 가면 순대나 어묵 따위를 먹을 수 없을까 찾아보게 되는데 또 요즘엔 있어도 잘 먹지 않으니까… 장보기 2차로는 그 근처의 이마트를 갔는데, 당분간 여기에 살게 될 테니까 미국에 있을 때 먹었던 것들 가운데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땅콩버터를 찾아봤는데 몇 안 되는 종류들이 다 식물성 경화유나 유화제들이 들어가 있어서 통과, 대체품으로 크림치즈를 찾아 보았는데 맛 없는 필라델피아 크림치즈가 무려 5,290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 가운데 하나가 같은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라도 덩어리 그대로 파는 것에는 유화제가 안 들어 있는 반면 통에 담겨 있는 건 유화제가… 어쨌든 무슨 고급 음식을 먹거나 사대적인 취향을 계발할 것도 아닌데 내가 미국에서 몇 년 살았다고 저런 싸구려를 저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먹겠다고 설치는 건 아무래도 꼴값같다는 생각이 들어 크림치즈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 놓았다. 크림치즈가 무슨 철갑상어 알-이걸 또 ‘캐비아’ 라고 안 쓰고 그냥 철갑상어 알이라고 쓰면 못 알아먹는 사람도 있겠지? 다들 생활 속에 영어 단어 쑤셔 넣기가 생활화 되어서…-도 아니고… 그 밖에 생크림을 죽 둘러봤는데 서울과 덴마크 유업을 뺀 나머지 제품들에 유화제가 첨가되어 있었다. 식재료에 쓸데없는 것들 집어 넣는 이런 나쁜 경향은 아무래도 미국에서 배운 듯. 배워야 될 건 안 배우고 배울 필요 없는 나쁜 것들만 배우면 우리나라가 선진국 되나? 하긴 뭐 이젠 미국이 선진국이라는 생각도 잘 안 들기는 하지만. 마지막으로 짐이 들어오면 빵을 좀 열심히 구워 볼 생각에 우리밀가루의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고는 2차에 걸친 장보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참고로 우리밀은 800그램 정도에 3천원이 채 못 되는 정도의 가격으로, 그 정도면 별 부담없이 빵이든 뭐든 구워서 마음껏 먹을 수 있을 듯.
# by bluexmas | 2009/04/13 18:04 | Life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