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matching Trip to North

사실 이런 글을 쓸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왜 그런지는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쓰리라…), 토요일에 짐이 나가고 또 인터넷이 끊기기 전에, 그리고 여기를 떠나기 전에 이 글은 꼭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끝인데 시간을 억지로 내서라도 정리는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3월 초에 북쪽으로 여행을 갔다왔다. 차를 몰고 집을 떠나 우리가 흔히 뉴욕이라면 떠올리게 되는 맨하탄으로부터도 족히 세 시간 반은 차를 타고 올라가야 되는 윗동네 뉴욕(흔히 말하는 Upstate New York)을 찍고, 그 근처에 있는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들렀다가 미국의 북동쪽 가장 위의 메인 주 포틀랜드까지 올라가 찍고 제철도 아닌 가재를 한 마리 먹은 뒤, 다시 차를 몰고 꾸역꾸역 남쪽으로 내려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버지니아 주의 리치몬드에서 몇 시간 잔 뒤 집에 오는 길에 내가 참여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어진 컨벤션 센터가 있는 노스 캐롤라이나 주 Raleigh(귀찮아서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쓰려고 했더니 ‘랄리’는 도저히 어색하구나-)에 들러 내 새끼 아닌 새끼를 보고 내려온, 그런 여행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엿새 밖에 시간이 없었으므로, 첫 날과 다섯 번째 날에는 평균 열 다섯 시간 정도 운전만 계속 했으며, 그 어떤 것도 시간을 들여 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여행은 무엇인가 보기 위한 것이 아닌, 그냥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 무작정 떠돌아 다니기 위한 것이었다. 내려간 기름값이 2불을 계속해서 밑돌았기 때문에 가능한 여행이었다. 또한 당분간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여행을, 나는 7년 전 미국에 막 발을 들여 놓았을 때 했었다. 그때 역시 기름 값이 2불, 어쩔 때에는 1불을 밑돌았기 때문에 가능했고 또 처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작정 차를 몰고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발 들여 놓았던 워싱턴과 버지니아 윗동네, 뉴욕을 거쳐 아무런 이유도 없이 환상을 품고 있었던 도시 보스턴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여행이었다. 별로 아는 것도 없이 맵퀘스트에서 지도를 뽑아 보면서 차를 몰았고, 겁도 없이 백 마일까지 속력을 냈다가 어딘지도 모를 도시에서 경찰에게 잡히고는 면허를 취소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때도 시간이 엿새 밖에 없었으므로, 버지니아에서 이틀, 뉴욕에서 이틀, 그리고 보스턴에서 또 하룬가 이틀인가를 자고는 줄곧 차를 몰아 올라갔다가 또 내려왔다. 부모님이 오시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그 여행에 지쳐있었고, 부모님은 아버지의 은퇴를 둘러싸고 벌어진 온갖 부침에 지쳐있었으므로, 우리는 너무나 까칠해서 서로에게 배려만을 바랬고, 나는 그 뒤로 반 년 동안 부모님과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첫 번째 여행을 한 뒤로, 시간이 날 때마다 지도를 펼쳐보면서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북쪽 끝까지 차를 몰아 올라가 보고 싶다는 바램을 품어왔었다. 그런 바램을 품어왔던 지금까지의 시간 동안 여행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서쪽으로 차를 몰아 텍사스까지도 가 봤고, 성탄절을 끼고 추운 시카고와 밀워키까지도 올라가봤다. 그리고 시애틀까지 올라가 서부의 끝을 보기도 했으니, 이 모든 시간과 기억들을 마무리하는 여행으로써 맨 처음에 아무런 이유 없이 동경했던 북쪽으로의 여행을 가는 것은 참으로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시작했던 것처럼 마무리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길을 달리면서 어떤 경치를 보고 또 무슨 음식인가를 먹으면서도, 머릿 속으로는 줄곧 한 가지 생각만을 했다. 나는, 실패한 것일까? 7년 전, 떠나면서 나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 먹었었다. 또 누군가는 미국이 뭐가 그렇게 좋길래 거기에서 살 생각을 했냐는 식으로 생각할 것이고, 또 나에게 그렇게 물어보았던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냥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것들과 거리를 둘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을 더 원했을 뿐이고, 이 곳에서 그게 가능했기 때문에 여기를 생각했을 뿐이었다. 한국 드라마도 안 보고 한국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지도 않으니 저 새끼는 뭐 미국놈처럼 살고 싶은 거냐고 뒷다마를 깠던 사람들은 사실 일본의 소재를 가져와 대강 한국냄새나 나게 찍은 드라마 따위를 보고 한국 사람들이랑 어울려서는 토씨만 한국말로 쓰는 것에 불과한 겉핥기 한국말을 하면서 나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곤 해던 것이다. 아, 이 얘기는 지금보다 멀쩡한 정신을 다시 갖추게 되면 그때 공을 들여 쓰기로 하고 넘어가자.

하여간, 줄곧 생각했다. 나는 실패한 것일까? 뭐 거듭 말해왔듯이 원대한 꿈 따위는 가져보지도 않았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지금을 돌아보면 나이는 먹고 또 그만큼 삶이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정작 얻은 것은, 아니 내 것으로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에게 쉽게 줄 수가 없었다. 지난 7년 동안 이 곳에 살면서,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과연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안 그럴 수 있었을까? 계속해서 잃으면서도, 나는 그냥 그렇게 내가 원했던 거리를 지키는 재미에 지난 5년인가를 버텨왔다. 그러나 이제는 거리를 지킬 수 있는 능력도 없어져서, 그 거리를 지키는 재미조차도 없어진 것 같다. 그래서 결국은 이곳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또 얼마나 원하는 만큼 거리를 지킬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실패한 것일까? 이 한 가지 생각만을 줄곧 하다가 지루해질 때 쯤이면, 길고 지루한 운전을 하다가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놓는 것처럼, 다른 생각도 했었다. 만약 나 아닌 누군가가 이런 과정들을 겪고 또 겪어 여기까지 이렇게 왔다면, 그는 실패한 것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을까? 어째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판단을 내리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나의 판단에 얼마나 상처받을지 잘 알지만, 다른 사람은 얼마만큼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그렇게 얘기하려나, 바로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래도 경력도 몇 년 쌓고, 돈도 적당히 벌고, 영어로 많이 늘었지 않니…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는 데도 내가 쉽게 동의하지 못하면서, 아 그래도 난 정말 실패한 것 같아, 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건 내가 늘 그렇게 말해왔던 것과는 달리 욕심이 많았기 때문인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과연 내가 욕심부렸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냥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고 그래, 난 실패한 거야 #발, 이라고 시원하게 단정짓지 못하는 것일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도?

나도 잘 모르겠다. 지난 7년 동안 이곳에서 보낸 삶을 따로 떼어내면 몇 쪽 짜리의 책 따위가 될지는. 그러나 어쨌든 시작을 그렇게 했었듯, 그렇게 마무리 하는 여행을 다녀왔다. 그렇게 원했던 것처럼 계속해서 머무르지 못하고 등 떠밀려 떠나는 기분은…그렇다고 해서 내가 언제나 가지고 살아왔던 희망 따위를 모두 소진해버리고 떠나는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by bluexmas | 2009/04/01 11:01 |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