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일기(31)-그냥 몇 가지

 오늘도 트렁크와 뒷좌석에까지 뭔가를 가득 채워서 근처 goodwill에 가져다 주었다. 이런 일이 한 번씩 있을때마다 소비에 대한 개인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원하지 않아도 가지게 되고, 그럴 때 마다 참으로 부끄럽다. 물욕 많은 종자로 사는 건 피곤하다. 거기에다가 직장인이라는 핑게로 게을렀던 것까지 생각하면 더 부끄럽다. 기증한 물건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베이 같은데에 내다 팔아도 팔았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 했지 단 한 번도 시도해보지는 않았고 결국 쓸데없이 쏟아부은 돈의 아주 작은 부분조차도 회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참 인생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 인생은 남들이 잘 들여다보지 못하는 작은 구석 같은데서 참으로 찬란하게 한심하고 나는 그걸 속속들이 다 알고 있으니 누군가에게 충고 따위는 안 하고 사는게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하는게 사람이니까, 결국에는,

2. 몇 년 전 같으면 책을 버린다는 생각은 안 했을텐데, 이젠 책도 좀 버리고 싶어서 책장을 들여다 보면서 열심히 골라내고 있다.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건축에 관련된 책은 거의 사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몇 년간은 책이 별로 늘어나지 않았지만, 학교에 있을때 샀던 책들의 등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모든게 디지탈화 되어 가는 이 마당에 건축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몇 년간 디지탈화 된디자인 과정이 디자인 자체에 미친 영향이 상당한데, 정작 그 디지탈화 된 디자인 과정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결과물은 비싼 종이에 화려한 색으로 찍혀서 비싼 책-아날로그 매체-이 되어 팔리고 있는데 그런 현실이 자가 모순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분야도 그렇지만, 건축하는 사람들의 책에 대한 욕심도 상당하다. 때로는 그런 욕심이 잘 나가는 사람들이 명품 옷이나 가방 같은 걸 지나치게 탐하는 것과도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 또 잘 나가는 건축가들은 명품 옷이나 가방 같은 것에 대한 욕심도 상당하지 않으셨던가… 한 건축가와 다른 건축가 사이에 존재하는 켜가 백만겹이고 그 켜의 끝과 끝에 존재하는 현실의 간극이 어떠한가 생각해보면 가끔 이 직업이 다른 직업보다 더 모순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지금의 내가 처한 현실이 이 직업 자체에 대한 시각을 한층 더 회의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걸 감안한다고 해도… 계속 쓰면 불평만 할 것 같으니 여기에 대한 얘기는 그만.

3. 누군가 우리나라에는 라임이 없다고 그랬다. 그럼 레몬은 있나? 우리나라에 가면 뭘 해먹고 살게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시장 같은데에 가서 장 봐다가 밥 하고 그러나, 옛날에 마장동이나 이런 데에서 살 때처럼. 다른 건 몰라도 오븐은 있는데서 살고싶은데, 그건 마음대로 될지 잘 모르겠다.

4. 거의 3일째 비가 내리고 있다. 마지막 겨울비였으면 좋겠다. 떠나기 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의 첫 자락이라도 좀 마음에 담아가게.

 by bluexmas | 2009/03/01 20:02 | Life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笑兒 at 2009/03/01 22:35 

라임과 레몬, 아보카도, 자몽- 다 있긴 한데,

가격표를 보면 정말 머리가 띵- 해요. 특히나 아보카도.

 Commented at 2009/03/02 23: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3/07 21:33 

笑兒님: 저도 덧글 보고 인터넷 찾아 봤는데 가격보고 정말 머리가 띵-하던데요? 뭐 안 먹으면 그만이니까 별로 아쉬움은 없답니다.

비공개: 시장에서 장보다가 찐빵 사먹던 시절도 벌써 옛날인거냐? 가면 밥이나 같이 먹자… 꽃등심 아니더라도,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