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일기(4)
그렇다, 실업 일기를 쓰기로 했다. 얘기했던 것처럼, 지금의 이 상황도 내 삶의 일부니까. 누군가 보여주려고 이짓거리를 하고 있다면, 이 따위 치부를 드러낼지도 모르는 기록은 남기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옛날에는 아예 일기 따위도 쓰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나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때 나의 감정이 어땠는지…
나머지 3일 동안의 얘기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쓰기로. 실직자라 시간이 많이 남을 줄 알았는데 또 그렇지도 않더라…
막상 회사에 다닐 때에는 주말에 회사에 가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는데, 늦게 일어나서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뭔가-날 생선이나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주변에 떨어진 계란 껍데기가 아니라서 다행-를 주워먹고 차를 남쪽으로 몰았다. 내가 손을 쓰기도 전에 회사 컴퓨터에 접근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다지 공식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컴퓨터에 저장해 놓았던 자료를 꺼내올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비정기적으로 이런저런 자료들을 내 컴퓨터의 하드에 저장해놓고 또 비정기적으로 그걸 집으로 옮겨서 정리해왔었는데, 아 이제 한 번쯤 옮길 때가 되었네? 라고 생각하던 차에 이렇게 벼락을 맞았다. 나를 가엾게 여긴 누군가가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의 호의에 반하게, 컴퓨터에는 접속이 가능했지만 내 폴더에는 접근이 불가능했다. 참 체계적으로 빠르게 손을 썼구,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치솟는 스트레스… 프로젝트에 관련된 자료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필요한 자료들도 많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없어진다는 건 곧 기억의 상실이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까. 예를 들어 지금은 마치긴 했지만 IDP 기록 등등은 나중에도 필요할 확률이 높은데… 또 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어진 Raleigh Convention Center의 오프닝 파티때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따로 받아, 포트폴리오 따위에 쓰려고 저장해 놓았었는데 그건 또 어떻게 하고… 어제 이렇게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떠올라서 그 사진을 가져오면 이걸 이렇게 또 저걸 저렇게…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그런 것들이 살짝 주저앉는 듯한 느낌. 어쨌든 이젠 내 회사가 아니니까 오래 있기도 마음이 불편해서 얼른 빠져나와 조력자에게 점심을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2주 있다가 볼 다음 면허 시험 과목 교재를 준비하고 또 이것저것 챙기고… 회사를 아직도 다닌다면 가장 맞는 시간대인 것 같아서 내일 아침 일찍 정기검진 약속을 잡아놓았더니 회사는 갈 일이 없어졌는데 월요일 교통체증은 뚫고 시내로 내려가 봐야 되는 상황이…
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나는 아직까지도 기분이 그렇게 저조하지는 않지만, 오늘처럼 이런 상황이 하나씩 벌어질때마다 그 기분이 작은 주먹으로 한 대씩 맞아서 멍이 드는 것처럼 조금씩 나빠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다니는 것에 기대고 또 맞춰서 짜 놓은 생활 습관을 또 하나하나씩 적응하도록 고쳐가면서 느끼는 낯선 느낌, 또 어디에서 누군가는 나의 이런 상황을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그래서 사실은 생각할 필요도 없는 피해의식, 또 뭐가 있을까… 어쨌든 하나하나 시간이 지날 때마다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또 나의 감정은 주먹으로 맞은 듯 멍이 계속해서 들어가고… 뭐 그렇게 될까?
# by bluexmas | 2009/02/02 16:33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