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참는 연습
처음 본격적으로 했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그때 처음엔 친했다가 나중엔 정말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게 된 녀석이 있었거든요. 처음 알았죠, 이런 감정이 증오라는 것이고 또 그게 자라고 또 자라면 정말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도 하게 되는구나… 왜 그렇게 미워했냐구요? 그걸 설명하려면 지금 쓰려는 얘기보다 더 많이 써야 되니까 다음 기회를 살펴야 될 것 같아요. 어쨌든, 워낙 소심한 제가 뭐 죽이는 건 고사하고 어떻게 그런 감정을 당사자 앞에서 드러낼 수 있었겠어요. 그러니 그냥 안으로 타 들어가는 수 밖에. 뭐 그래도 그럭저럭 버텼었는데, 가끔은 정말, 아 저 인간-물론 언어 순화 중인 건 아시겠죠? 구어 표현이 또 써 놓고 보면 이상한 경우가 많아서…-이 내뿜는 이산화탄소가 섞인 공기를 들여마시는 건 짜증나는 일이야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니까요. 그럴 때에는 숨을 못 쉬어서 죽고 싶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 숨을 참는거에요. 일단 참아보는거죠 뭐. 숨을 더 쉬지 않고서는 못 살 것처럼 괴로운 순간까지 나를 몰고 간 다음에서야 내가 저 인간 싫어하는 감정을 어떻게라도 표현 한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사람 미워하는 것도 알고 보면 이렇게 괴로운데 이제는 좀 덜 미워하도록 노력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도 했던 것 같고… 근 20년도 다 된 얘기라서 좀 가물가물하네요.
요즘도 사실은 가끔 숨을 참는 미덕을 발휘해야 될 때가 있어요. 여자들은 잘 모르겠는데, 남자들에게는 냄새가 날 때가 있어요. 뭐 한국 사람들 김치 많이 먹어서 마늘 냄새 난다, 라는 얘기는 더 이상 할 필요도 없고 저 자신도 사실 확인을 해 보지 않아서 그렇지만 디오도런트 따위를 쓰지 않으면 이 동네 사람들에서는 냄새가 나거든요. 대부분은 어떻게든 그걸 잘 가리고 다니는데 가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지 냄새를 꼬리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같이 일하는 윗사람이거나 그러면 좀 괴로운 경우가 가끔 있죠. 한참 옆에서 얘기를 주고 받다 보면 정신이 혼미해질 경우가 있거든요. 그럴때 옛날에 그렇게 연습던 숨 참기의 미덕을 가끔 발휘하죠. 예전만은 확실히 못한 것 같아요. 그 사이에 담배도 좀 피웠었고 뭐 그래서…
냄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냄새에 대한 모욕은 오감에 관련된 모욕들 가운데 가장 강도가 큰 종류가 아닌가 생각해요. 일단 그 감각을 느끼는 개인차도 크고, 다른 감각보다도 그 윤곽이 분명하지 않거든요. 윤곽이라고 말하니까 좀 이상한데, 예를 들자면 보이는 거나 들리는 걸 가지고 뭐라고 얘기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냄새, 뭐 이를테면 체취랄지 그런 것들을 건덕지 삼아서 모욕하는게 때로 한층 더 모욕적으로 느껴지지 않던가요? 가끔 냄새의 경우에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경험 가운데에서 예를 들면, 중학교 2학년 때였나, 뭐 전형적으로 개싸가지 없는 부잣집 아들아이가 하나 있었거든요. 뭐 부동산 부잣집 아들에 위에 누나가 한 서넛은 있고… 뭐 저도 워낙 가난하게 살아서 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하필 같은 반이 되었고 또 근처에 앉기까지 했어요. 바로 뒷줄 옆이었나 하여간… 제 옆에 앉은 아이의 부모님이 대체 무슨 일을 하셨는지 기억이 지금은 잘 나지 않는데 그 일을 도와드리는 데에서 비롯된 건지, 무슨 체취가 있었던 것인지 하여간 그 아이한테는 뭔가 냄새가 좀 났었어요. 물론 좋은 냄새는 아니었겠죠.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몰라도 어쨌거나 그걸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려고 했는데, 부잣집 그 녀석은 하루에도 두 세번은 족히 ‘아 #발 이게 무슨 냄새야’ 를 입에 올리곤 했어요. 그것도 큰 소리로… 뭐 주변 애들은 다 알았죠. 그 냄새가 어디에서 오는지. 그렇지만 그걸 입에 담는 건 그 부잣집 아들 하나 밖에 없었어요. 개싸가지. 지금은 뭐 어디에서 잘 먹고 잘 살겠죠, 부잣집 아들이었으니까.
…아, 이 얘기까지 다 꺼내고 나니까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아셨다구요. 위에서도 그렇게 얘기했잖아요. 지금 ‘쓰려는’ 얘기라구요. 이런 같잖은, 그리고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의사소통 아닌 의사소통 방법이 바로 그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렇게 미워했던 인간이 잘 쓰던 방법이었죠. 뭐랬더라? 아, 나 이제 공부 더 열심히 해야 되니까 너희들하고는 말을 안 할거야, 라고 했던가? 하여간 뭐 그리고 나서는 애들한테 종이에다 하고 싶은 말을 써서는 내밀곤 했다니까요. 그것도 기분 나쁘게 빨간 색으로, 무려 영어랑 한글을 섞어서. 아 뭐 영어교육과 가서 선생한다고 그랬던가… 현실적으로 못 가는 학교를 갈거라고 3년 내내 큰 소리로 학교랑 과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데, 재수하는 것까지는 봤어요. 그 다음엔 알게 뭐에요.
어쨌든, 다 알았으면 이젠 제발 좀 꺼져주세요. 숨 오래 참아서 얼굴 파랗게 질린 거 안 보여요? 내가 무슨 매일 물질 나가는 해녀도 아니고. 해녀도 이 정도 숨 참을 수 있으면 뭐든 못 가지고 올라올 만큼 땄겠네, 바다 밑에서.
# by bluexmas | 2009/01/10 15:16 | —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