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 디저트의 비밀?
쓰고 나니 제목이 꼭 낚시용 같아서 마음에 살짝 걸리는데,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런 것이다. 녹차 아이스크림이며 케잌 따위를 좋아해서 사서 먹다보니 만들어 먹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비싼 녹차가루를 사서 뭔가 만들어봤음에도 도저히 그 색깔이 시중에서 파는 제품처럼 파랗게 나지 않더라는 것… 예를 들자면 하겐다즈 녹차 아이스크림만 해도, 정말 진하고 생생한 녹색인데, 집에서 만들면…
하겐다스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이 색깔은 녹차 아이스크림이라기 보다는 무슨 공업폐기물이나, 술 많이 마신 날 언제나처럼 단 음식이 너무 땡겨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한 통 다 퍼 먹고 잤는데 다음 날 아침에 결국 속이 뒤집혀 먹은 걸 다 게워내고 난 뒤 아이스크림이었을 것 같은 부분만 골라 놓은 것 같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녹차 아이스크림 맞고, 분명히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세 배는 많은 녹차가루를 넣었을 것이다. 싼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수입해온 동원 보령 가루녹차라나… 그러나 색깔은 그냥 저렇다. 생각해보면 흰색의 크림이나 우유, 노란색의 계란 노른자에 녹색 녹말 가루를 섞은 아이스크림 베이스가 절대 녹차의 색깔이 날 수 없지 않을까나…? 어쨌든… 녹차 아이스크림이랑 팥을 같이 먹으면 맛있는 건 또 알아서, 아예 팥을 설탕에 조려서는 아이스크림에 섞어 봤는데, 아이스크림 베이스가 완전히 얼고 난 다음에 팥이 얼마나 단단해질지 생각을 못하고 너무 살짝 삶아서, 팥이 옛날 비비빅에 들어가는 그것처럼 딱딱해졌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벤 앤 제리 아이스크림에 대한 프로그램을 할 때, Cookie Dough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은 언 뒤에 쿠키가 얼기 전의 부드러운 정도를 유지하는게 관건이라고 얘기하는 걸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만들어보고 나니 그게 무슨 얘기인 줄 알게 되었다. 뭐 색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맛은 괜찮았다. 문제는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들면 파는 것들처럼 단맛의 여운이 길게 가지 않는다는 것. 물론 그게 더 좋겠지만. 너무 딱딱하게 얼어 있어서 전자렌지에 잠시 돌렸더니 뭔가 더 토사물같은 느낌이…
그렇게 녹차 가루를 산 김에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았던 파운드 케잌에 도전해 봤다. 왜 한 번도 안 만들어봤을까, 생각해보니 필요한 빵 팬을 안 샀던 것이었다. 5불도 안 하는게 그 돈이 없었던 듯…T_T 어쨌든, 가지고 있는 책 Baking Illustrated에서는 베이킹 파우더를 쓰지 않고 파운드 케잌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촉촉하고 또 폭신폭신한 질감을 위해서 계란 노른자를 추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레시피를 소개했는데 내가 만든 건 그 책에서 얘기하는 것만큼 부풀어 오르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언제나 버터를 creaming하는 레시피에서는 버터가 무르면서도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게 중요한데, 나는 이 방법을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니다 보니 아직까지는 그 감을 못 잡는 것 같다. 이번에도 너무 딱딱하고 차가운 버터를 믹서에 돌렸던 듯. 어쨌든 레시피는…
재료
상온에 둔 버터 16 큰술(2 스틱)
설탕 1 1/3 컵
계란 3 개 + 노른자 3개
바닐라 1 1/2 작은술
물 1 1/2 작은술
소금 1/2 작은술
케잌 밀가루(단백질 함량이 적은) 1 1/2 컵
내가 만든 건 녹차 오렌지 파운드 케잌으로 바닐라와 물을 오렌지/라임 등등의 주스로 대체하고, 뭐 내키면 오렌지 술도 좀 넣고 해서 만들면 된다. Orange Zest 역시 필수.
만드는 법
1. 화씨 325도로 오븐을 예열한다.
2. 크리밍, 먼저 버터를 15초 돌리고, 설탕을 넣고 30초 돌려준 다음, 4-5 분 정도 계속 돌린다.
3. 계란, 노른자, 바닐라, 물을 한 데 섞어서는 믹서를 돌려주면서 조금씩 흘려넣는다. 소금 첨가.
4. 밀가루를 체에 쳐서(녹말가루를 이때 섞어 같이 체에 쳐 주면 골고루 섞인다), 반 컵씩 3의 반죽에 섞는다. 이 때 글루텐이 발달되지 않도록 살짝 섞어 주는 것이 관건.
5. 오븐에 넣고 70-80분 정도 굽는다.
요즘 사진-연출했으나 안하느니만 못한 이 사진을 보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올리고 싶지 않았으나 사진발 안 받아도 내 새끼인 것을(얘들아 못생기게 낳아줘서 미안, 아빠가 워낙 인물이 시원치 않아서T_T 뭐 이런 건가),올리는 김에 뭐 다 같이… 가운데가 아주 살짝 덜 익기는 했지만, 맛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못생겨도 맛은 좋아 뭐 그런…).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서 냉동시켜 놓았다가 전자렌지에 20초만 돌리면 간단한 아침으로는 훌륭하다. 참! 얘도 시중에서 파는 녹차 파운드 케잌 따위의 생생한 녹색에는 감히 도전장도 내밀 수 없는 그런 칙칙한 색의 파운드 케잌으로 태어났다. 내 손을 거쳐서 나가는 건 진정한 녹색을 띨 수 없는 저주에라도 걸린 걸까. 아니면 대체 무슨 성분이 들어갔길래… 성분표를 보면 색소 따위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나와 있건만.
# by bluexmas | 2008/12/30 13:55 | Taste | 트랙백 | 덧글(14)
녹차 아이스크림… 팥… 아, 정신이 혼미…
비공개 덧글입니다.
왠지 위에 비공개님 덧글이 이 내용일 것 같지만, 사실 녹차 아이스크림이나 녹차 파운드케이크라고 불리는 레시피에선 녹차 가루가 아니라 말차 가루 (抹茶)를 사용한답니다. 말차는 끓여 놓은 모습도 훨씬 더 산뜻한 연두색이에요. 아래 이미지를 보시면 일본에서 나온 녹차맛 여러 간식들의 패키지에 녹차가 아니라 抹茶 라는 단어를 써놓은 게 보여요.
http://nattokun.blogdns.com/nattokun/2005-02-06%20Maccha/DSC02397_resize.jpg
비공개 덧글입니다.
다음엔 말차사다가 더 맛잇게 만들어서 올릴께요^^
비공개 1님: 그러게요, 말차가루… 내일 사다가 주말에 한 번 만들어볼까 생각중이에요.
turtle님: 족집게신가봐요, 아니면 비공개 덧글을 꿰뚫어 보실 수 있는 능력이라도?^^ 좋은 정보도 주셨는데 곧 말차가루로 만들어 올려볼께요. 정말 그런 색이 나올지 저도 궁금하거든요.
모조님: ‘하하하 마하고고’ 라니 뭔가 응원구호 같은 느낌이 드는걸요 >_< 회사에서 굴러다니던 건데 그냥 주워서 집에 가져왔어요.
비공개 2님: 궁금해하시는 사진의 물건은 스웨터에요. 가장 좋아하는 색깔 스웨터라 몇 년 전엔 많이 입었는데 올해는 보푸라기도 많이 일고 해서 한 번도 안 입었어요(사실은 살쪄서 안 맞을까봐 두려워서…T_T)
모조님: 하하 네^^ 최근에 워쇼스키 남매가 만든 스피드 레이서 빌려보다가 궁금해져서 위키피디아도 뒤져봤던 것 같아요. 참고로 영화는 그냥 키치 오르가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