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Hatebird Fly
얼마 전까지 새를 한 마리 키웠었다. 그 새는 내 몸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관계의 해가 마지못해 뉘엿뉘엿 지던 어느 저녁, 나는 증오로 이글이글 타오르며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는 해를 삼켰다. 그 무렵, 나는 삶의 의욕을 잃고 있었으므로 타는 해를 삼키면 식도며 입, 그리고 혀가 타버려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이 삶을 마감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혀는 타서 없어질 테고 입은 붙어버릴 테니 그렇게 죽어가면서도 고통의 소리를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짜릿했다. 물론 그보다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도 차고 넘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서서히 떠나고 싶었다. 태어나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순간까지의 기억이 없으니, 시들어가다가 져버리는 순간까지의 기억은 담아가지고 떠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려면 가늘고도 길게 시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어쨌든 그런 생각으로 해를 삼켰지만 나는 멀쩡했고, 그 다음날 아침엔 또 하나의 해가 떠올랐다. 허무했다.
기억하기 싫어도 기억할 수 밖에 없을 만한 일들을 숨이 간신히 붙어 있을 정도로만 겪느라 태양을 삼켰다는 사실 따위는 기억할 수 없던 기간의 어느 날 새벽, 나는 타는 듯한 갈증으로 잠에서 깨어서는 빨간 덩어리를 토해냈다. 새끼 새였다. 새로 태어나는 생명이 으레 그러하듯 새는 하나의 젖은 덩어리에 불과했지만, 깃털만큼은 타 들어가는 것처럼 선명한 붉은 색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언젠가 삼켰던 해를 기억해냈다. 석 달 하고도 열흘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나는 그 긴 시간 내내 삭힐 수 없는 증오에 가위라도 눌린 듯, 침대에 누워 칩거하고 있었다. 해가 잘 들지 않는 북쪽 방에 놓아둔 침대였다. 나는 무거운 솜 이불의 호청을 꿰맨 실을 풀어내어 한 쪽 끝은 새의 오른 쪽 발목에, 다른 한 쪽 끝은 나의 왼쪽 손목에 묶었다. 그렇게 푹 젖은 덩어리에 불과했던 새는 밤새 독수리만큼 크게 자랐고, 침실 천장을 맴돌며 팔목을 잡아당겨 나의 잠을 깨웠다. 풀을 빳빳하게 먹인 호청을 뚫고 지나가야만 하는 무명실은 이불 호청보다도 빳빳했고, 그 실에 쓸린 팔목에선 피가 흘렀다. 하얀 실은 곧 붉게 물들었지만, 새의 깃털만큼은 아니었다. 그 날, 나는 근 백 일만에 집을 나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식당에서 빨간 육개장을 꾸역꾸역 먹고는 기운을 차렸다.
그렇게 나는 기운을 차려 다시 사람들 사이를 파고 들었지만, 품고 있던 증오는 그대로였다. 아니, 어쩌면 해를 삼키기 전보다 더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 사람에게 품고 있었던 증오는 이유도 없이 증식해 가까운 사람, 잘 모르는 사람, 아예 모르는 사람,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을 품고 돌아가는 세상에까지 뻗쳤고, 새는 그 증오라도 먹고 사는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으며 그 붉은 색도 날로 생기를 더했다. 곧 나보다 커진 새의 그림자는 나를 뒤덮었고, 새는 보지 못하지만 그림자는 볼 수 있던 사람들은 그 그림자를 나의 그늘이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두운 사람이라고 나를 향해 손가락질 했지만, 그건 그늘이 아니고 그림자일 뿐이었고, 나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은 채 생기는 감정을 속으로만 삭혔고, 그 억지로 삭히는 감정은 곧 증오로 익어갔다. 결국 그들이 나를 어두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그들을 향한 나의 증오는 커져만 갔고, 그에 비례해 새도 자랐고, 그림자도 커졌다. 그렇게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똑 같은 꿈을 계속해서 꾸던 어느 날 밤이었다. 그 꿈을 대체 몇 밤이나 꾸었는지, 너무나도 오랜 반복에 헤아릴 여력을 잃어버린지 오래였지만 꿈의 내용은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수술복을 입고 처형대에 묶여 있었다. 그들은 내 뿌리깊은 증오의 원천이라고 했다. 마스크마저 쓰고 있었으므로 누가 누구인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남자와 여자가 비교적 고른 비율로 섞여 있는 가운데 서른 명 정도의 사람들이 가로 한 줄로 죽 늘어선 처형대에 묶여 있는 상황이었다. 나에게는 누구를 죽이고 또 누구를 살릴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처형은 천천히 고통을 주기 위해 화살로 이루어졌다. 처형단은 의사의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나는 화살이 사람들에게 꽂힐 때까지도 자리에 앉아있다가, 권총으로 확인사살을 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묶여 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가면서 숨이 계속 붙어 있는 사람의 이마에 총알을 박는 것이었다. 그게 끝나고 나면 가장 왼쪽에서 신호를 내리는 처형단의 우두머리가 자기들이 입는 흰 가운데 배인 피와 죽은 사람들의 수술복에 배인 피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아름답게 보이느냐고 물었다. 나는 언제나 대답을 위해 망설였고,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베갯잇은 하얀 색이었지만 그걸 흠뻑 적신 건 다행스럽게도 그저 땀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똑 같은 꿈을 계속해서 꿔왔던 그날, 처형은 언제나처럼 집행되었고 나의 확인사실차례도 돌아왔다. 역시 언제나처럼 습관적으로 숨이 붙어있던 사람들의 정수리에 총알을 박아 넣다가, 일곱 번째 처형대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남자였다.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나는 눈 때문에 그가 누군지 기억할 수 있었다. 여태까지는 왜 그의 눈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일까. 초점이 없는 왼쪽 눈, 그는 군 복무시절 1년 고참, 그러니까 속칭 아버지라 불리던 선임병들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강원도 어디에선가 나고 자랐다는 그는, 눈 덕분에 면제를 받을 수 있었지만, 형편이 좋지 않은 집에 입이라도 하나 덜어주고 싶어서 자원했다고 자랑처럼 말하곤 했었다. 손가락이 없는 사람은 방아쇠조차 당길 수 없지만, 총은 어차피 한 눈을 감고 겨누기 때문에 자기에게는 별 문제가 없을거라고, 그렇게 신체검사장에서 자원입대의 변을 늘어놓았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총을 잘 곧잘 쏘는 편이었다. 가끔 그의 사로와 가까운 곳에서 총을 쏘게 되면 감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감지 않는, 그래서 두 눈 모두를 뜨고 총을 쏘는 그를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보다 사격 점수가 좋지 않은 날이면 그의 잔소리를 하루 종일 들어야만 했다. 두 눈 달린 새끼들이 어째 애꾸보다도 총을 못 쏘나? 니들은 다 병신보다 못한 상병신들이야, 상병신. 그렇게 말하는 그의 군모는 언제나 계급장이 중심에서 왼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었다. 그렇게 그는 두 눈 모두 멀쩡한 다른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거기에 대학에 다니던 사람들이라면 미워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니들이 뭘 더 배우는데? 여기에선 다 소용없다니까. 그런 그의 사람들에 대한 증오는 계급이 올라가면서 알량한 권력을 쥐고 나서는 폭력의 형태로 표출되었고, 나는 그가 좋아하는 표적이었다. 개새끼, 뭣 때문인지 몰라도 맘에 정말 안 든단 말이야. 그는 내가 처음 자대에 배치 받고 난 다음부터 전역대기에 들어가는 그 날까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나에게 손을 댔다. 별 다른 이유가 없는 날이 더 많았고, 이유가 있다 해도 없는 것보다도 못한 억지가 대부분이었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내가 그를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화살의 대부분이 심장과 가까운 곳에 꽂혔기 때문에 처형당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에게 확인사살이 하나의 요식행위였던데 반해, 그의 화살은 왼쪽 옆구리에 꽂혀있었고, 옆구리와 심장과의 거리만큼 그는 살아있었다. 나는 그의 머리를 쥐고 치켜 올려 총구를 이마에 붙였다. 그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의 오른쪽 눈에서만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쨌거나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었다. 역시나 베갯잇을 흠뻑 적신 건 그저 땀이었다. 이제 북쪽에 있는 침실 천장을 가득 메울 만큼 자란 새는 떠 있는 채로 잠들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해가 뜨기 전에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식빵 한 덩어리와 우유 한 통, 그리고 오랫동안 옷장에 처박아 둔 오리털 파카만을 챙겨 북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챙겨간 식빵을 꾸역꾸역 먹고 또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잠이 넘쳐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을 때면 휴게소에 차를 대고 잠깐 눈을 붙이면서 차를 몰아 다음 날, Maine 주의 Bar Harbor에 도착했다. 채 오후 네 시가 되기 전에 해가 진다는, 그러니까 미국에서 가장 빨리 해가 지는 지역이었다. 정오가 조금 못 된 시간에 도착했으므로, 마지막 남은 식빵과 우유를 우적우적, 또 꾸역꾸역 먹고 또 들이키고는 잠을 청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해는 눈 앞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추운 겨울 오후이다 보니 그날 그렇게 삼켰던 것만큼은 붉지 않았지만, 새를 날려보내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로 차에서 내려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새는 계속해서 내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다. 어차피 해가 지면 다음 날 아침까지는 그늘, 아니 그림자에 가리워질 일이 없기는 했지만, 나는 이제 낮에도 그림자를 멀리하고 싶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칼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으므로, 나는 다시 시동을 걸어 차에 달린 라이터를 달궈 뽑아 들었다. 달아오른, 돌돌 말린 철판은 해와 새의 중간쯤에 위치한 붉은 색이었다. 실은 곧 불에 끊겼고, 새는 날아올라 해가 지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향하고 싶었으므로 나는 새가 채 사라지는 걸 확인하지도 않은 채 차를 몰기 시작했다. 왼쪽 손목에는 상처에서 배어 나온 피를 머금고 붉게 물든 실의 고리가 팔찌처럼 남아있었다. 그 팔찌 아닌 팔찌와 팔목에 남은 세 줄의 상처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잠이 밀려왔다. 그러나 갈 길이 너무 멀었다. 일 분 일 초라도 집에 빨리 돌아가 그 북쪽으로 난 방의 침대에 몸을 누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Based on the conversion with M
# by bluexmas | 2008/12/27 13:11 | —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