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없는 날개
정말 카피라이터를 장래희망으로 삼았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때였던가… 그리고 그 뒷 배경에는 글의 제목과 같은 이어령씨의 장편 소설이 있었다. 어느 날인가 저 책이 아버지의 책장에 꽂혀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어령씨라고는 ‘축소 지향의 일본인’ 밖에는 몰랐기 때문에 아, 이 사람이 소설도 썼네, 하는 신기한 마음에서 집어들었던 것 같다. 내용은 어린 내가 읽고 카피라이터를 감히 꿈꾸었다는데에서 예측할 수 있듯이 카피라이터를 주인공 삼아 펼쳐진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그냥 소시민 카피라이터, 어느 광고회사에 다니는데 대박을 터뜨려 본 적도 없고 기억을 더듬어보면 차라리 무능력자로 낙인 찍혔던 건 아닐까 생각이 된다. 하여간 그렇게 직장 생활은 별볼일 없고 아내에게는 결혼할때 속으로 흠집이 많이 난 다이아몬드 반지를 준 사실을 들킬까 전전긍긍한다. 시간이 오래 흘러 아이까지 두었음에도.
그리고 그 아이가 바로 줄거리 전체를 풀어나가는 실마리이다. 책 속에서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로 그려진 남자의 아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남자와 같이 살지 않는다. 정신지체아이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 꼭 그래야만 되었는지는 지금 잘 모르겠지만 남자는 아이를 성당인가에서 운영하는 시설에 맡기고 주말에만 찾아간다.
그렇게 살던 남자에게 역시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 좋은 아이디어로 카피를 써 대박을 터뜨리는 기회가 찾아온다(기억을 더듬어보면 남자의 아들이 뭔가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것도 같다).그 덕분에 남자는 회사에서도 다른 대우를 받게 되고 여러가지로 좋은 일들을 한꺼번에 겪게 된다. 그렇게 대박을 터뜨린 다음에 남자에게 맡겨진 광고는 운동화… 남자는 타잔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면서 보통 사람이 그 운동화를 신으면 타잔처럼 도시를 줄을 타고 날아다니듯 활보하는 광고를 제안하고 역시나 대박이 터진다. 그 전에는 회사에 알렸는지 안 알렸는지 그게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젠 회사에서도 그에게 정신지체아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회사에서는 그 아들이 맡겨진 시설의 아이들에게 운동화를 기증하고 광고를 틀어주면서 아이들의 반응을 살펴 광고에 쓰려고 한다. 그런 실험 비슷한 것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남자는 아들이 시설의 성당 종탑 아니면 어딘가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가게 되는데, 알고 보니 아들은 그 광고를 계속 보고는 자기도 그 운동화를 신으면 광고에서처럼 날 수 있을까 싶어 운동화를 신고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엔 아들을 잃은 부부가 거의 해탈에 가까운 정사를 하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그게 어린 마음에 굉장히 슬프게 느껴졌었다. 알고 보면 전해 이해하지 못했어야 맞는 나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런 얘기. 시대 배경이 그런지라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7, 80년대 스러운데 그때는 책을 읽고서 카피라이터가 이런 직업이라면 해봐야 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이과를 지망했으니 결국 기회는 원천봉쇄되었는데, 나중에 어떤 모임에서 친해진 누나 하나가 광고회사에 다니는지라 얘기를 했었는데 직업 밖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 달리 일반 아파트 분양 광고 뭐 이런 것들을 위한 일을 주로 했다고… 건축 안 하는 사람들이 내 같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스케치해서 뭔가 멋진 디자인을 궁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일까? 하여간… 누구에겐가 카피라이터 얘기만 들으면 이 책 생각이 거의 조건반사에 가깝게 난다. 물론 이 책에 대한 글도 이 글이 처음이 아니다. 어쨌든 이 양반 최근에 ‘디지로그’ 도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책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읽을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다. 그래도 ‘축소 지향…’ 은 나름 괜찮았던 것도 같은데.
# by bluexmas | 2008/10/22 12:33 | Book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nippang at 2008/10/22 12:39
저는 책이나 영화를 보고 줄거리를 쓰는 일을 무척 싫어하기도하고 잘 쓰지 못하는데, bluexmas님이 쓰신 책의 줄거리가 무척 재미있어서 ‘와아~’하고 신나게 읽었어요. 음…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사이라면 저도 아버지 책장에서 ‘즐거운 사라’를 꺼내 읽고 여기저기서 선정성 운운하며 시끄럽게 언급하기에 가졌던 기대감(?!)에 비해 시시하다고 생각했으니까…워..원래 그런 나이가 아닐까요?
Commented by intermezzo at 2008/10/22 12:55
저 책 읽어보고싶네요 +.+
저 아는 동생은 영화 what women want의 나이키(였는지;) 광고 제작 프리젠테이션을 보고 광고계에 투신했는데…아직도 이상(? 보다 정확히는 영화겠지요;;)과 현실의 괴리속에서 괴로워하더라구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10/24 13:36
nippang님: 이 책에 대한 얘기는 입으로도 하고 글로도 많이 써 봐서 그런가봐요. 저도 초등학교 5학년땐가 즐거운 사라 읽었는데 참으로 유치하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더라구요. 그냥 웃기려고 쓴 것 같은… 서점에서 파는데 야하기로는 ‘내게 거짓말을 해봐’ 가 최고였죠. 군대에서 휴가 나와서 그 책을 보고는 살까, 망설이다가 말았는데 나중에 전부 들어가더라구요. 살걸 후회했죠.
intermezzo님: 아직도 서점에 있을지도 몰라요. 전 안 찾아봤어요. 옛날에 ‘내일은 사랑’ 뭐 이런거 보고 건축과 좋다고 들어온 애들 다 울고 불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가끔 너무 멀어서 사람들을 힘들게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