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더듬어 보니

정말 딱 10년 전 이맘때 대학로에서 누군가를 만난 적이 있었다. 어쩌다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는데, 쓸데없이 미련이 남아서 나 혼자 발버둥을 치다가 군에서 제대를 하고 나서야 얼굴 한 번 볼 수 있게 된 사람이었다. 하여간 사람을 만나서는 술이라도 먹자고 어느 호프집엘 들어갔는데, 그 집의 한쪽 벽에 오늘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그녀와 가수 변 아무개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아니, 붙어 있다기 보다는 그 사진으로 벽이 도배되어 있었다고 하는게 맞는 표현이겠다. 아예 사진을 벽 크기로 뽑아서 붙여놓은 것이었으니까. 아마 그 집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술을 마셨던 모양인데 다른 가게들처럼 사진을 뽑아서 액자에 담아 걸어놓은게 아니라 아예 사진=벽인 뭐 그런 상황이었으니까. 그때가 아무리 10년 전이라고 해도 그 두 사람 인연이 끝난게 그보다 훨씬 전 일이라서, 그 사람과 나는 아니 대체 언젯적 사진이 아직도 여기 붙어있는거냐고 키득댔으니까. 신기한게 그때 그 얘기한 것 말고는 대체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10년 지났으니 그럴 때도 된걸까.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영화는 채 보지도 않은 수잔 거시기(제목을 다 썼다가는 사람들이 검색을 할 것 같아서…)와 모 청춘 드라마(대학 생활이 다 그 청춘 드라마 같았으면 이 세상이 천국이겠지!)에서 홍 아무개의 불쌍한 첫 번째 여자 친구(두 번째는 유호정, 세 번째는 염정아였지. 깔끔하게 군대 보내버림으로써 막을 내렸던 것으로… 예나 지금이나 군대는 갑작스런 종말을 정당화하는 최선의 극적장치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역 밖에는 없다. 뭐 연예인에게 마음 잘 안 주는 사람이다 보니…

그건 그렇고, 솔직히 나는 죽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 이해는 한다(라고 말하기도 조금 그렇지만). 살다보면 때때로 그냥 삶이 이렇게 이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인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 때의 고통이라는 것은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by bluexmas | 2008/10/02 12:15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