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의 마지막 밤
저녁 일곱시를 조금 넘긴 시간, 나는 코펜하겐의 어느 길거리에 서서 무선 신호를 흠쳐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제는 무슨 섬에 들어갔다가 바람에 그대로 날아가 버릴뻔 했다. 결국은 왜 거기까지 갔을까 싶게 잠만 자다 왔다.
불과 2주만인데도 코펜하겐에 여름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날씨는 제법 쌀쌀해서 변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나게 한다.덕분에 내 감기는 만만치 않은 수준으로 진화해서 숙주를 괴롭힌다. 그래도 길다면 길었을 여정의 끝인데 무슨 거창한 감상이라도 가져야 할지, 아직은 조금 망설여진다. 여느 삶의 순간들이 그렇게 지나가듯, 이 여행도 그렇게 그렇게 조금씩 나를 밀쳐내고 개인사의 둥지에 자리를 잡으려 한다. 마침 날씨도 웅크리기에 딱 좋으니 거기 좋았던,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기억들 옆에 서로들 어깨를 기댄채 머물러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심약한 주인이 버거운 순간을 접할 때면 잠깐,반짝 고개를 들어 수없이 많이 가져왔던보다 의미있는 순간들의 존재에 대해 일깨워줬으면.
# by bluexmas | 2008/09/14 02:20 | Life | 트랙백 | 덧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