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그날이라면
, 평소와 크게 다른 것 없는 월요일이었지. 어제 늦게 잠들어서 여덟시도 넘어서 일어난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기름 값이 올라서 다들 차를 안 끌고 나오는지 도로가 안 막히니까 아주 늦게 도착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계속해서 아침을 안 먹고 출근하고 있어서 스스로에게 못마땅하다고나 할까… 회사에서 대충 때우기는 하지만.
J는 2주일동안의 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출근했고, 나는 평소처럼 아침을 때우자마자 일단 J에게 내려가서 그동안의 진척상황을 간략하게 말로 설명해주고 이젠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었다고 얘기했지. 실망하는 눈치지만 어쩔 수 없더라구. 나도 더 이상 오후에 밖에 나가기가 싫어졌고… 그것보다 원래 팀에서 더 이상 밀릴 수도 없고… 하여간 다시 올라와서 시공업체에게 보내줄 자료들을 한데 모아서 정리해서 메일로 날려주고, 다시 내려가서 조금 더 자세하게 인수인계를 해 줬지.
왜, 지난 번에 워크샵 얘기했었잖아. 이거 상황이 정말 웃기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상황을 파악했는지 목요일로 예정된 행사를 다음주로 미뤘다더라구. 나야 뭐 알 바 아니긴 한데 정작 실무자인 나에겐 물어보지도 않고 또 말해주지도 않는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정말 감이 안 잡히더라구. 어차피 그건 이번 주 목요일에 예정대로 치룰 수 없는 것이었든, 적어도 직접 일을 하는 내 입장에는.
그 전체적인 과정은 이래. 시공업체가 의자만 설치하는 또 다른 업체에 하청을 주면, 그 업체에서 나와서 구역별로 도면을 참고해서 의자를 설치하거든. 그렇게 설치가 끝나면 나나 또 다른 애들이 나가서 그 의자들이 제대로 설치되었나 하나하나 다 점검을 하는거지. 이걸 1차 점검 Initial Punch라고 하는데 대략 20개 정도의 항목으로 이뤄진 점검 목록이 있어. 모든 나사는 다 잘 조여졌는지, 번호표는 제대로 붙었는지… 뭐 이런 식으로 이뤄진 목록에 맞춰 의자 하나하나를 점검하는거지. 전에도 얘기했지만 한 구역당 의자가 500개에서 750개 정도 있고, 한 사람이 오후 네 시간에 두 구역, 천 개 이상 정도를 점검하는게 보통이고. 그렇게 하나하나 점검을 해서 문제가 있는 의자는 도면에 뭐가 잘못되었나 기입을 하게 되고, 그 도면을 모아서 스캔, PDF로 만들어서는 시공업체에 보내주면 시공업체는 또 하청업체에 그걸 건네줘서 지적된 의자들을 고치도록 하는거지. 그게 끝나면 설치업체는 시공업체에, 또 시공업체는 우리한테 알려주면 우리는 그 전에 스캔해서 보내줬던 도면을 다시 들고 나가서 지적된 의자들만 점검하는거야. 그걸 2차 점검 Second Punch라고 하는거고. 워크샵을 주관하는 애들은 그 2차 점검을 애들을 데리고 나가서 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려면 1차 점검이 끝나고 적어도 1주일은 시간이 필요하거든… 내가 그 스케쥴을 맞춰주려고 지난 주에도 네 번이나 나갔는데, 나 혼자선 역부족인데다가 나가기로 한 애들이 자기 본 프로젝트 마감에 밀려서 못 나가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해서 결과적으로는 손이 좀 부족했던거지. 결국 J가 돌아올 때까지 1층 일곱구역이 남았고… 그러니까 당연히 목요일엔 워크샵 못 하는거겠지.
누가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과장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는데, 이건 뭐랄까 경계하는 차원에서 나를 배제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 미국 애들 이런 경우 많거든, 결정적인 순간이 뒷통수 때리는. 보통 워크샵은 지들끼리 알아서 지지고 볶고 해도 상관이 없었는데 이번 경우에는 진짜 프로젝트를 가지고 하는 거니까 주관하는 애들 가운데 누구 하나가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든지 해서 뭔가 돌아가는 걸 알아야 되는데 그렇지는 못하고 가장 많이 이 프로젝트를 알고 있는 나에게 물어보려니 나를 자기들 워크샵 조직하는데 끼워넣어야 되는데 또 그건 싫은거고… 그런 상황에 이르면 결국 죽이되든 밥이되든 일단 나는 배제시켜놓고 지들끼리 알아서 하는 상황이 되는거지. 아, 말로 이 미묘한 상황을 설명하기 참 어려운데 하여간 그래.
요즘, 회사에도 불경기의 비가 내리고 나니까 기회주의 죽순이 진흙을 뚫고 고개를 하나, 둘 씩 쏙쏙 내밀고 있거든. 그런거 꼴 보기 싫어서 조금이라도 그런 여지가 보이면 말리지 않으려고 아예 입을 닫아 버리고 상대도 안 해. 나이가 적든 많든 받들어 줘야될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해달라고 난리 안 쳐도 받들어 주는거고, 그게 아니면 눈 앞에서 아무리 생지랄을 쳐도 눈 하나 깜빡 해주기 싫은 성격이다보니 다들 참 꼴 보기 싫어서… 이 나라에서 직장 생활하는게 가장 어려운 점이라면, 미안하지만 영어가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에서 모인 애들의 참으로 다양한 민족성에 기반한 꼴값을 두루두루 참아줘야 한다는거지, 다들 미묘하게 다르니까…. 조금 더 깊게 얘기하고 싶은데 그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를 것 같아서 생략.
그래도 여섯 시 반에는 퇴근할 수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다, 라는 생각으로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빽빽했던 습기가 기적같이 다 가셨는지 같은 기온인데도 숨 쉬기기 훨씬 쉽더라구. 그래서 아, 빨리 집에 가서 창문 다 열어놓고 공기 좀 바꿔야 되겠다고 생각했지. 요즘 습도가 너무 높아서 그렇게 덥지 않은데도 문을 꽁꽁 닫고 에어콘을 틀어놨더니 영 답답했거든.
열 번에 한 번, 아니면 다섯 번에 한 번 쯤은 회사에서 나와서 학교 체육관으로 가면서 일부러 차를 학교 안으로 몰고 가는 경우가 있어. 그럼 돌아가는 건데, 그래도 가끔은 학교 다닐때 생각이 나서 그렇게 하고 싶더라구. 사실 뭐 학교에 그렇게 오래 머물렀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가르치는 누군가 나에게 편견 같은걸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하고 공부할 수 있어서 편했다고나 할까… 뭐 그래서 생각이 자꾸 나는 모양이겠지.
그렇게 교정 안을 거쳐서 체육관으로 향하다 보면 웃기는게 누군가 등 떠밀어서 학교를 떠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질때가 있어. 사실은 내가 원해서 나온건데. 아니 뭐, 그냥 누군가가 내가 원하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고나 할까…
물론 나도 알고 있어, 그렇게 뭐 감상에 젖어본답시고 교정을 왔다갔다 하다가 보기 싫은 사람과 마주칠 수도 있다는 걸. 뭐 그러나 어쩌겠어. 싸구려 감상에 젖어보려면 그 정도 대가는 감수해야만 하는 것일지도. 또 뭐 마주치면 어때, 본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하여간 그렇게 습기가 가셔서 가을처럼 느껴지는 공기속으로 차를 달리고 있으려니 오늘이 여름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뭐 여름이 시작되기만 하면 기다리기 시작하는 그 날처럼 느껴지더라구. 응, 아마 8월 말이면 집을 또 비우게 될 것 같은데, 돌아올 무렵이면 바로 이런 날이 기다리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 그때쯤 되면 뭔가 또 달라지게 될까, 나에게도 이젠 좀 변화가 필요한 것 같은데… 그렇게 한참 또 집을 비우고 어딘가 떠돌아 다니다가 돌아오면 공기든 기분이든 운이든 뭐든 좀 달라져 있을까, 올해도 이제 조금씩 저물어 가는 기분인데, 또 그렇게 아무일 없이 지나가게 될지, 한없이 궁금해지는 또 날씨 덕에 궁금해 할 수있는 그런 저녁이었던 거지, 오늘.
# by bluexmas | 2008/07/15 12:12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