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발라낸 햇살
친가쪽 식구들은 생선을 좋아했어요.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언제나 손수 장을 보셨는데 생선도 사다가 말리시곤 했죠. 시골집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말년에 서울과 경기도를 전전하실때에는 좁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생선을 말리셨고 저는 그 냄새 때문에라도 할아버지댁 나들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어요. 물론 그것말고도 수천가지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잠깐, 여자아이라서 할아버지에게 차별받지는 않았으니까 그건 이유가 안 될거에요. 더 웃긴 건 그것 아니고도 수천가지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겠지만.
하여간, 외탁을 한 저는 생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밥상머리에서 핀잔을 듣기 일쑤였어요, 아빠한테… 기본적으로 고기를 많이 안 먹는 집이었던데다가 아빠의 식성을 따라갔던 엄마덕분에 거의 매 저녁마다 생선을 먹었으니까요. 그럼요, 그 할아버지댁 좁은 베란다에서 냄새를 풍기며 말라갔던 생선들도 주말에 나들이를 갔다온 다음에는 밥상에 오르곤 했죠. 사실 전 그 물고기들이 어떤 종류였는지 아직도 몰라요, 거의 손을 대 본적이 없거든요. 굳이 고기를 더 좋아했다기보다는 그냥 생선냄새가 싫었던 것 같아요. 거기에다가 그렇게 밥상머리에서 꾸중듣는게 싫어서 지금도 생선은 거의 안 먹고, 혼자 살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고등어나 연어말고는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특히 굴은 정말 아직까지도 냄새조차 맡고 싶지 않아요. 하여간 네 사람을 위한 식탁에서 내 자리는 항상 엄마 옆이었는데, 엄마는 늘 나를 위해서 고등어 가시를 발라주곤 했어요. 뭐 사실 고등어 가시 바르기가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순서를 기억해보면, 아니 뭐 사실 기억할 필요도 없죠, 아주 가끔 고등어를 먹는 나도 늘 그 순서대로 가시를 발라서 먹으니까. 그냥, 반으로 갈린 고등어 몸통을 구워서 껍데기가 있는 쪽부터 살을 발라먹는거죠. 요즘은 고등어를 사다가 구우면 껍데기가 너무 두꺼워서 잘 안 먹는데 어렸을때는 그렇지 않아서 살을 먹으면서 껍데기도 같이 먹었던 것 같아요. 아니야, 생각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고등어 껍데기는 똑같이 두꺼웠는데, 그때는 그냥 아빠한테 더 핀잔듣기 싫어서 그냥 먹었던 것 같아요. 아예 밥상에 올라온 생선을 보시자마자 껍데기도 버리지 않고 다 먹어야 된다고 얘기하셨던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그렇게 반으로 갈린 몸통의 가장 두꺼운 부분에 젓가락 두 짝을 다 찔러 넣고 그 사이에 들어가 있는 세 번째 손가락-얘 이름이 뭐였죠?-으로 젓가락을 벌리면 큰 살덩어리가 발라지잖아요. 그럼 엄마는 그걸 숟가락에 올려놓아주곤 했어요, 뭐 모든 엄마들이 다 그랬겠지만… 하지만 지금 기억해보면 신기했던 건, 젓가락질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된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엄마는 꼭 고등어 가시를 발라주곤 했어요, 그것도 고등어만. 조기나 뭐 이런 건 짤 없었어요. 그나마 내가 고등어는 다른 생선처럼 깨작거리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르죠. 그것도 아니면 아빠가 나한테 싫은소리 하는게 나처럼 듣기 싫으셨던가.
하여간 그렇게 껍데기쪽 살을 다 발라먹으면, 뒤집어서 등뼈에 붙은 살을 발라먹어야죠. 엄마는 항상 등뼈가 없는 쪽, 그러니까 살만 있는 쪽을 아빠와 오빠쪽에 놓았기 때문에 등뼈는 꼭 우리차지였어요. 고등어라는게 워낙 살덩어리가 큰 생선이니까 사실 껍데기 붙은 쪽으로 발라먹고 나면 남은 살이 별로 없긴 하지만, 얼마 안 남은 등뼈살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져서 훨씬 더 맛있었던 것도 같아요. 그냥 살을 발라도 되는데, 엄마는 늘 먹던 토막을 뒤집었었던 것 같아요. 하여간 그렇게 얼마 안 남은 살을 발라먹고 나면 정말 깨끗하게 살이 발린 고등어 등뼈 토막만 남잖아요, 그럼 뭔가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같고… 특히 생선을 잘 안 먹었던 나를 생각해보면. 아빠는 그 깨끗하게 살이 발린 뼈를 보면 꼭 한마디씩 덧붙이시곤 했죠. 당신 어렸을적엔 그것도 불에 구워서 다 드셨다고…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아직도 기억하겠어요? 지긋지긋하다니까요. 아빠라는 사람 자체가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여기 앉아 있으니까 내려오는 햇살이 꼭 가시를 발라놓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 햇살은 쨍쨍하게 내려오는데 하나도 뜨겁지 않잖아요. 그것도 꼭 고등어 살 발라놓은 처럼 깨끗하게, 잔가시도 없이… 청어에 잔가시가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해요? 아냐, 그래도 청어는 준치에 비하면 정말 양반이라니까. 정말 아빠 덕분에 준치도 국을 끓여서 엄청나게 많이 먹었는데, 그런 날이면 가족 모두가 식탁에 적어도 30분은 앉아있곤 했다니까요, 가시가 너무 많아서… 그래서 맛도 몰랐어, 아빠는 왜 준치가 썩어도 준치인지, 그 감동 설화-아니, 우환가?-를 매번 읊어대셨지만, 난 정말 식초랑 쑥갓맛으로 먹었다니까요, 남길 수도 없고… 어쨌든 이런 햇살이라면 모래알이 반짝은 해도 역시 뜨겁지는 않을 것 같아. 그나저나, 여기 커피 정말 맛 괜찮네요. 한약같이 쓰고 진한 걸 좋아하는 나한테는 조금 연하게 느껴지는게 흠이긴 하지만… 그렇게 웃는 걸 보니 얘 또 뜬금없는 소리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뜬금없는 소리를 먼저 꺼낸 사람이 누군데요? 왜, 비늘얘기 꺼냈길래 나도 물고기얘기 꺼낸 것 뿐이라구요. 허무하긴 또 뭐가 그렇게 허무하다고.. 맨날 이상한 사람만 골라가면서 만난 사람이 누군데, 안 그래요?
# by bluexmas | 2008/07/04 11:45 | —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