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어떤 사용설명서
아직도 사람들은 사용설명서라는 단어를 쓰나? 메뉴얼이라는 단어가 너무 입과 손에 익어 그냥 그렇게 쓰려다가 말았다. 하여간, 언젠가는 꼭 앉아서 책을 읽으리- 라는 마음에서 괜찮은 책장과 책상을 들여 놓았음에도 지난 1년 하고도 반도 넘는 시간동안 채 10분도 앉아 진득하게 책을 읽어본 적 없는 책방이라는 곳에는 매뉴얼, 아니 사용 설명서만을 모아놓은 작은 공간이 있다. 밥통이든 카메라든 컴퓨터든 뭔가를 샀을 때 딸려오는 설명서를 한 데 모아놓은 곳이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기능외에는 원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설명서들을 들춰보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시도는 아주 오랫동안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주, 아주 오래된 무엇인가를 꺼내서 다시 읽어볼 기회가 다시 찾아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여간 주말에 이런저런 것들을 꺼내서 넘겨보면서, 꽤나 많은 걸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때로 어떤 것들은 직관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어려운 문제를 떠 안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다시는 필요없을테니 버려야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 들춰보는 마음은 달콤하고도 씁쓸하다. 정말 한 4년 전만 해도 다시 이것들을 들춰볼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므로 어느 수요일에 그것들은 아파트 단지에서 공동으로 쓰는 쓰레기통의 문턱까지 갔다 왔었다. 정말 혹시나, 하는 나의 물려받은 노파심이 아니었더라면 그것들은 벌써 땅에 묻혀 썩어 흙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얻은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는 않는다. 어제 살짝 눈치를 본 결과, 그들은 그냥 그렇게 흙으로 돌아가는 편이 이렇게 다시 돌아와 우매한 주인에 조언을 주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들의 죽음이 결국 나의 삶이며 행복일 수 밖에 없으니까.
# by bluexmas | 2008/06/04 14:17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