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
서른 넷, 친구들 가운데는 아들 둘을 거느린 아빠도 있으니 이젠 제법 살아본 것 같은 분위기라도 내면서 ‘이제 내가 조금 살아서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건 쉽지 않다. 그만큼 누군가를 용서해야만 되는 상황을 많이 겪고 있다는 반증일테니까…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을 수록 사람들 사이에 자신을 노출시켜야 되는 경우가 늘어나기 마련이고, 굳어가는 머리는 남을 이해하는데 갈수록 인색해지기 마련이니 결국 늘어가는 건 반목과 갈등일 뿐이고 그 사이에서 남을 미워하는 감정은 간절히 원하지 않아도 새록새록 피어오르게 마련이다. 절벽의 바위 틈새에 핀 꽃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반목과 갈등 사이에서 피어난 증오 따위는 태생이 그러하니 아름답기란 애초에 글러먹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눈이 뚫려 있어서 본 자신을 원망할 정도로 추하지나 않으면 정말 다행이겠지.
그러나 노력한다, 되도록이면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그건 사실 나라는 사람이 무슨 성인군자가 되어서 죽어 사리라도 남기고 싶은 욕망을 가져서가 아니라(물론 화장은 심각하게 고려해보겠지만… 땅속에 누워있으려니 한여름에도 추워서 견딜 수 없다는 죽은이들의 불평에 잠을 잘 수가 없는 요즘이라서-), 너무나도 단순하게 그런 감정을 지니고 사는 것이 버겁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내가 마음 편하게 살고 싶기 때문에 남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막말로 내가 누군가를 더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더 용서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노력해봄에도 불구하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은 생기게 마련이다. 거기에는 갖가지 다른 이유가 가격표처럼 붙어있을 테지만 하나하나 다 들여다 보면서 확인하려는 바보짓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래봐야 기분만 더 나빠질테니까. 그런 사람들은 그냥, 억지로라도 용서해보려고 계속 생각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품고 살기로 마음 먹는다. 어린 아이를 잃은 엄마들이 아이를 가슴에 묻는 것과는 사실 좀 많이 다르겠지만, 짐짓 그런 감정 따위는 없는 것처럼 자신을 속여가며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가슴에 묻는다. 뭐, 살다보면 그런 사람 한 둘쯤 생기는 것도 비교적 정상에 가까운게 아닐까- 라고 별로 위로같지 않은 위로도 해 가면서.
새벽에 갑자기 아주 오래된 기억을 되감아야만 하는 계기가 생겨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일요일 하루를 보냈다. 서점에서 책을 읽고 돌아오는데 일곱시가 넘도록 해는 쉬러 갈 낌새를 보이지 않았고 그냥 집에 돌아가기 아쉬운 마음에 공원에 들렀다. 해가 쨍쨍한만큼 바람도 쌩쌩 불어서 그런지, 연을 날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을 날리는 것으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오늘 꽤나 행복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여자 혹은 남자친구 만나는 것보다 더…라는 생각을 걷다말고 벤치에 앉아서 하고 있었다. 바람이 생각보다 거세서 음악을 크게 듣고 있었음에도 바람소리가 귓속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 by bluexmas | 2008/05/05 12:15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