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의 생일
V는 제가 속해있는 팀의 admin(administrator, 즉 서무계원인 셈이죠. 보낼 택배 관련 서류 준비해주고, 우편물 온 거 있으면 자리까지 가져다 주기도 하는 등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해주는…)이에요. 아이들 셋이 대학에 다닐 정도의 나이니까 50대로 추정되는 아주 점잖고 예의 바른 흑인 아줌만데 오랫동안 창업주 할아버지 비서 노릇을 하다가 옮겨왔죠. 사람이 너무 친절하고 착해서 팀 모두가 좋아하는데, 저의 생일이 이 아줌마의 생일 바로 전이어서 제가 생일턱 준비를 했습니다. 아침 당번 안 한지도 오래 되고, 또 워낙 좋은 사람이라서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길래 어제 그저께 이것저것 준비를 했죠. 보통은 케잌 하나 덩그라니 놓고 노래 부르고 끝이었는데 그렇게 정성 없어지는 경향이 마음에 안 들더라구요. 그래서 치즈 케잌을 굽고 뭐 이것저것 만들어가서 배터지게 먹였죠. 사실 지난 제 생일에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이 챙겨주도록 되어 있어서, 정말 심각하게 네가 가져오는 케잌 먹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 말자, 라고 말하려고 했어요. 저는 세상에서 성의없는 사람이 제일 싫고, 그렇게 성의없으면서도 자신은 대접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싫어하거든요. 겉치레라면 받지 않아도 괜찮구요. 그리고 그가 저렇게 제가 싫어하는 인간의 여건을 모두 갖춘터라… 어쨌든 다들 모여서 맛있게 먹는 걸 보니 기분이 좋더군요. 음식의 힘이라는 건 그런거겠죠. 모여서 즐기고 얘기하고… 위에서도 성의가 어쩌구저쩌구, 라고 얘기했는데, 음식 만드는 건 정말 생각이 없으면 같은 걸 여러번 만들어도 맛이 너무 없어질때가 있어서 신경을 잘 써야만 하더라구요. 그래서 가끔은 그렇게 뭔가 만드는 시간이 좋을 때가 있어요. 다른 생각 안 하고 몰두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안 하면 해봐야 의미가 없다는 걸 아니까, 정신차려서 바르게… 차려놓은 걸 사진 찍어서 올렸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필 오늘 카메라를 안 가지고 출근했더라구요. 뭐 그럼 넘어가는거죠. 위의 사진은 Almond Orange Biscotti에요. 너무 짧게 만든 것 같은데, 역시 비스코티는 만들기 쉬우면서도 그럭저럭 보기는 좋은, 그런 과자가 아닐까 싶어요.
# by bluexmas | 2008/04/18 13:24 | Life | 트랙백 | 덧글(6)
(아니면 아침당번과 함께 하는건가요)
싫어하는 사람을 챙겨줘야하면 으 정말 싫을 듯
물론 좋아하는 사람일 경우는 매우 기쁘게 임하겠지만요..
Eiren님: 수퍼마켓에서 파는 케잌은 정말 알면 먹기 어려워져요… 그 치즈케잌은 사실 약간 실패작인데 뭐 사람들은 너무 좋아해서…맛은 괜찮았는데 속이 완전히 굳지를 않았더라구요.
모조님: 네, 아침은 알파벳 순이구요, 생일은 바로 전에 생일 맞았던 사람이 챙겨주는 것이랍니다. 저는 그래도 아주 기쁜 마음으로 했어요. 다행이죠 뭐. 싫어하면 침 뱉어서 만들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