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주 늦은 밤, 내지는 월요일 아주 이른 아침

저의 감정 세계는 정확하게 둘로 나뉘어져 있다고들 해요. 주중의 그것과 주말의 그것… 5+2 일테니 사실 주중의 그것이 더 크게 존재해야 이치에 맞을텐데, 어차피 감정의 세계에는 논리 따위는 개에게나 주어버렸으니 두 세계가 같은 크기로 존재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죠. 어차피 내 맘이니까.

하여간 지금처럼 이렇게 늦은 일요일 밤, 내지는 이른 월요일 아침 이를 닦으면서 제 얼굴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가끔 화가 울컥 치밀어 오를 때가 있어요. 왜 그럴까요? 주말이면 저는 얼굴을 날카로운 칼로 박박 문지르는게 싫어서 면도를 안 하거든요. 그러나 얼굴을 그런 꼬라지로 주말 내내 그냥 놓아두면 지금 이 시간 쯤에는 정말 봐주기 민망할 정도로 남루하게 보이곤 하죠. 그럴때마다 저는 화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거에요. 아, 내 이 삶도 남루함에 의해 슬슬 좀먹히고 있구나, 라는 불쾌한 무력감 같은 감정이 드니까요.

인생의 남루함은 정말 병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알고 보면 늙는다는 것, 노화도 일종의 질환일테니 그 노화의 별책부록과 같은 남루함이 병이 아니라면 그것도 이상하겠죠. 어쨌거나 그렇게 남루함이 언젠가는 해맑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마음에 그늘처럼 스멀스멀 내려앉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정말 미치도록 답답할 때가 있어요. 그러나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그저 침묵을 지키는 수 밖에는…

그냥, 이 모든 늦은 밤, 아니면 이른 아침의 감정은 내일 해가 뜨면 저를 또 다른, 제가 원하지 않는 세계로 던지는 것을 스스로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에요. 뭐 어떤 사람들은 그걸 ‘월요병’ 이라는 좀 더 그럴싸하고 간단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죠. 그러나 저에게는 그 감정이 그렇게 세 음절로 간단히 일컬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끈끈한 떡처럼 엉킨 감정들이 이리저리 달라붙어 대체 어디서부터 떼내어야 될지도 감을 잡을 수 없는 그런 끈적끈적하고 무거운 감정… 그걸 월요병이라고 부르면 너무 앙증맞아지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저는 사양하겠어요.

언제 또 정전이 있었는지, 침대 머리맡의 시계는 또 거짓말을 하고 있더라구요. 지금 이 늦은 시간에 시계를 맞추는 것 만큼 짜증나는 일도 없어요. 그렇게 열심히 시계를 맞추는 이유는, 대체 지금이 내일 아침과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아주 잔인하게 확인하기 위해서, 또한 저 자신을 제가 원하지 않는 세계로 더 적극적으로 내몰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서니까요.

마지막으로, 꽤나 오랜동안 곰곰히 생각해 온 건데, 짜증나는 일이 많으면 많을 수록 밤에 잠을 못 이루는 이유는, 내일이 오늘처럼, 아니면 그것보다 더 지긋지긋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정확하게 그런 기분까지는 아니지만, 침대를 잘만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널린 빨래들을 개고 있노라니 대체 새벽 한 시가 다 되는 이 늦은 시간에 빨래를 개는 나라는 인간의 삶은 대체 어느 누구에게 권장할만한 사항이 있을까, 라는 생각에 이르자 침대에 고단한 몸을 눕혀도 그렇게 즐겁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자려다 말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은 거에요. 이렇게 처음과 끝이 말도 안되게 다른 얘기라도 주절주절 늘어놓으려구요. 하지만 말이 안 되어도 괜찮아요. 감정에 세계에서는, 논리 따위는 개에게나 주어버렸다고, 위에서 그렇게 말했으니까.

 by bluexmas | 2007/08/27 14:07 |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erasehead at 2007/08/27 15:29 

이곳도 새벽 한시 27분.

그곳이 한시간 빠르겠죠.

요즘 계속 밤을 샜더니… 얼굴이 성인여드름으로 인해 달표면이 되어 버렸습니다.

피부의 남루함… 장난아니게 슬프고 화가 납니다.

어쩜 피부 너까지!!!!!! ㅡㅡ;;;;

 Commented by Eiren at 2007/08/27 19:54 

조금 있다가 다시 월요일이 돌아온다는 사실이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권장할 만한 사항이라면 주말에 할 일을 잘 끝내서 한 주를 무리없이 이끌 수 있다는 점은 어떨까요.

 Commented by blackout at 2007/08/27 22:53 

저도 월요병 느끼기 싫어서 10시반에 불끄고 누웠어요. 자고일어나보니, 그냥 월요일 아침이더군요…^^

 Commented by basic at 2007/08/28 02:19 

남루함이란 외양에서 오는 것보다도. 상황적인 면이 더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 같아요. 명품을 걸친 사람들도 남루하다고 느낄 때가 있는 것처럼.

 Commented at 2007/08/28 12: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8/28 12:25 

erasehead님: 밤 새우실만큼 급한 일이 있으신가봐요? 전 피부하나는 신이 내려서 이날 이때까지 여드름이라고는 구경한 적이 없답니다. 흐흐…

Eiren님: 그러나 셔츠 다림질과 청소를 못해서 엄청 짜증났었어요 어제… 결국 오늘 아홉시 반에 들어와서 앉지도 못하고 셔츠 다렸죠-_-;;;

blackout님: 전 일요일에 그렇게 일찍 잠들어본 적이 없어요. 보통 열두시는 되어야지…

basic님: 와! 저 지금 말씀하시는게 뭔지 딱 알아요. 언젠가 많이 겪어봐서…

비공개님: 그럼 자원봉사나 뭐 그런 걸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원래 적이 없어지면 또 삶이 지루해지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도 늘 자기 자신이라는 적이 있기 마련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