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den State (2004) – 어딘가 산만한

지난 봄이었나, The Shins의 앨범이 발매될 무렵, 워낙 오랜만의 앨범이라 기대가 컸는지 이곳저곳에서 밴드의 특집 기사를 내보냈고, 저도 본의 아니게 그 기사들을 읽으면서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관심을 가져보지 못했던 밴드에 잠깐동안이나마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번 Tower Record에서 앨범 The Chutes Too Narrow을 들었다 놨다만 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밴드가 저의 마음을 제대로 산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결국 나중에야 앨범을 사기는 했지만 즐겨 듣게 되지는 않았으까요.

영화를 본 얘기를 뜬금없이 밴드에 대한 화제로 시작하는 이유는, 이 영화 Garden State가 The Shins를 대중들에게 알리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저에게는 또 거꾸로 The Shins가 이 영화를 빌려 보게 된 계기였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작년 봄에 무수히 흘러나오는 The Shins에 관한 기사를 읽다보니, 이들이 The Garden State의 OST에 참여했고, 그 앨범이 엄청나게 좋았다더라… 이런 정보를 얻었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빌려보게 되었죠. 공짜 쿠폰으로…

영화의 줄거리는 뭐 그렇습니다. 영화 중반에서야 드러나는 이유로 부모와 오랜세월 떨어져 살았던 배우 지망생 Andrew(Zack Braff 분… 네, 몰랐는데 감독이더라구요)는 어머니가 욕실에서 익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오랜만에 LA에서 뉴저지 고향마을로 돌아와 그 익숙한 것들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는 어색한 경험속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그렇게 낯설은 여행 속에서도 보람을 찾게 되니, 찾아간 정신과에서 엉뚱한 구석을 가진 여자아이 Sam(Natalie Fortman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는 사랑을 계기로 삶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됩니다.

뭐 이렇게 줄거리를 읊어대고 나니 영화도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인데다가 DVD 껍데기의 각종 미사여구마저 그 느낌에 맞장구를 쳐주니 영화는 당연히 아주 재미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의외로 약간 공허하고 산만합니다. 볼 당시에는 그래도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보고 시간이 지날 수록 이런 느낌을 가지는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영화는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산만하게 펼쳐 놓았다가 제대로 마무리를 못한채 흐지부지 내버려 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원만하지 못한 부모의 사이에서 외동으로 자라 사실은 피해자여야만 하지만, 어머니가 반신불수로 인생을 살다가 정황상 자살하는데 원인-사실은 이 원인조차 나쁜 부부관계의 산물인 어머니의 우울증으로 인한 것이었지만-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졸지에 가해자가 되어버린 주인공 Andrew와 밝은 아이처럼 보이나 무엇인가 시원하게 펼쳐져 드러나지 않는 그늘진 구석을 가지고 있는 Sam의 이야기만으로도 이 영화는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 거기에 끊임없이 주변 인물들을 끼워 넣고 또 그들의 감정이나 시각에도 시간을 할애해서 무엇인가를 말하려다 보니, 영화는 그 어떤 것에도 시간을 제대로 할애해서 이야기를 하지 못하다가 급하게 결말을 짓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그래서 어느 등장인물의 삶에도 몰입하여 공감을 할 수가 없으니 영화는 조금 싱거웠습니다. 시작에서는 부모와의 갈등을 암시하고, 또 중간부터는 새롭게 시작될 사랑의 예감을 흘려 대더니, 결말은 그 둘 다를 맛배기로만 보여주고 끝을 맺습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Andrew가 비행기를 버리고 Sam에게 돌아오는 결말은 너무 예측 가능한 것어서 정말이지 김새는 기분이었습니다.

뭐 그래서 결론적으로 영화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감정이 전해지는 느낌이 들다 말았기 때문이죠. 답답했다고나 할까요? 저는 감독=주인공지도 모르고 영화를 보았는데, Zach Braff가 뉴저지(Garden State는 뉴 저지주 번호판에 써 있는 주의 애칭이죠) 출신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이 영화가 자서전적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런 귀찮아서 확인해보지 않았습니다).

참, 왜 Shins가 이 영화를 통해 알려졌나 했더니(물론 그 전에도 많이 알려지기는 했었지만), 두 주인공이 병원에서 만날 때, Andrew가 Sam이 헤드폰을 쓰고 있는 것을 보고 묻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무슨 음악을 듣느냐고… 거기에 Sam은 The Shins, 인생을 바꾸는 음악 life-changing music 이라고 대답을 하면서 헤드폰을 건네줍니다. 나오는 노래는 2001년의 앨범 Oh, Inverted World의 수록곡 New Slang입니다. 많이들 아실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영화 중간에 Zero 7의 In the Waiting Line도 나오더군요. 이 노래는 House의 겨울 어느 겨울 에피소드 끝에 나온 것을 듣고 앨범을 샀는데, 다른 노래들은 그냥 지루한 트립합이라서 별로였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의 몽환적인 키보드(아마도 Rhodes 피아노 같은데…)와 덤덤한 가사/보컬은 참 잘 어울리더라구요.

 

 by bluexmas | 2007/08/23 12:12 | Movie | 트랙백 | 덧글(12)

 Commented by Eiren at 2007/08/23 12:20 

아랫곡의 뮤직 비디오에 나오는 인형같은 아가씨와 쏟아져내리는 우유가 은근히 잘 어울리네요..곡도 좋고, 말씀하신대로 키보드가 분위기를 더 몽롱하게 만드는 듯 해요. 하우스 겨울 에피소드라면 어쩐지 눈 오는 밤 혼자 지팡이를 짚고 걷는 하우스가 나올 때 BGM으로 어울렸을 듯..

 Commented by blackout at 2007/08/23 12:21 

인디영화라 그런지 진짜 산만하죠. 뭐가 뭔지 모르게 끝나버리고.

 Commented by intermezzo at 2007/08/23 13:16 

Zack Braff…The Last Kiss에 나온 배우 말씀하시는 거죠?

에고..극장에서 영화 마지막으로 본게 언젠지도 가물가물하네요. 아마 The Last Kiss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Becoming Jane보고싶은데 영화는 완전 제 스타일(^^;;)인데 여주인공이 너무 싫어하는 애라서 망설이고 있어요. 그런데 그래서 망설이고 있다기보다는 게을러서 그런 것 같아요 ㅎㅎㅎ

 Commented by laboriel at 2007/08/23 14:31 

ㅎㅎRhodes…Hammond.. 소리 너무 좋아합니다.

한때 triphop많이들었는데 한때인거 같네요..

 Commented by D-cat at 2007/08/23 20:20 

처음 들어보는데 괜찮군요. 묘한 기분도 연출하면서 잔잔한듯 하면서 뭐랄까..음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을 자아내는 군요^^; 살짝 우울한 기분도? ㅎㅎ

 Commented at 2007/08/23 23:5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intermezzo at 2007/08/25 12:10 

이 포스팅 때문에(!) 오늘 영화보고 왔어요 ㅋㅋㅋ 극장간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서 ㅠ.ㅠ 친구랑 점심먹다가 “나 오늘 영화볼거야!!”하고 우다다다 달려갔다지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8/26 07:22 

Eiren님: 저도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런 비슷한 장면에서 저 노래가 나왔던 것 같아요. 눈이 내렸던 것은 확실하구요.

blackout님: 그냥 쿨하게 보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걸까? 라는 생각이 나중에는 들더라구요. 초반부에는 그런 생각이 안 들었었는데…

intermezzo님: Last Kiss라는 영화를 안 봐서 모르겠는데, 뉴욕은 영화표가 너무 비싼 것 같더라구요. 저는 늘 $5만 내고 봐서… 저의 포스팅이 intermezzo님의 영화 감상 욕구를 자극했다니 기쁜데요?^^

laboriel님: 트립합이 좋기는 한데, 뭐랄까 분위기 비슷한 밴드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같이 망한건지, 아니면 장르 발전이 없어서 그런건지 참… 그렇네요.

D-cat님: Shins 말씀하시는건가요? 그렇다면 보컬의 목소리가 그래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음색이 건조한 듯 싶으면서도 감정을 자극한다고나 할까요…

비공개님: 저는 늘 포스팅 많이 하는데 비공개님이 덧글을 적게 남기시는거에요-_-;; 포스팅 하나에 덧글 하나씩, 비공개님께 숙제를 드리겠습니다.

 Commented by intermezzo at 2007/08/27 12:14 

The Last Kiss라는 영화는, 결혼을 앞둔 친구들의 일탈(?)을 소재로 한, 규모가 작은 영화예요. 저 배우 연기가 꽤 괜찮았고 그럭저럭 볼만 하긴 했는데 11불내고 볼만한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ㅎㅎ 전 “어른들의 성장”을 그린 영화나 소설들을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뭔가 되다가 만….;;

한번 극장가니까 또 가고싶어져요 -_-;; 책임지세욧.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8/28 12:38 

으하… 그러셨군요. 기약은 없지만, 다음에 뉴욕가게 되면 제가 영화를 한 편 보여드리죠 뭐. 그 타임스퀘어의 마블슬랩크리머리 있는 옆에 극장 하나 있죠? 마담 터소 건너편에…뭐 거기라도 괜찮으시면. 뉴욕은 숙박비만 부담없으면 좀 더 자주 가고 싶은데 요즘은 좀 그렇네요.

 Commented at 2007/12/28 01:3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1/02 11:43 

맞아요, Scrub에 나오는데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상하게도 나탈리 포트만을 싫어해서 안 땡기는 뭐 그런 영화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