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쓸 각오로 산 무쇠 프라이팬 2종 셋트
한때 ‘미제’ 라는 단어가 튼튼하고 질 좋은 물건을 의미하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 미국에서도 미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뭐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인건비 상승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저는 개인적으로 생각보다 낮은 국민수준이 원인이 아닐까 싶지만…). 그러나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각종 제조업 분야에서 전통을 지켜가면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남부 테네시주의 Lodge Manufacturing이라고, 무쇠(주철 鑄鐵, cast iron)로 된 냄비, 프라이팬 및 각종 주방기기를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냄비나 팬들이 스테인레스를 재질로 테프론 및 각종 코팅을 가해 음식물이 달라붙지 않도록 가공하는데 반해, 이 무쇠 그릇들은 그런 가공이 안 되어 있는 원시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처음 사서 음식 만드는데 쓰기 전에 길들이기 seasoning 작업을 해줘야만 합니다. 알고보면 그 길들이기가 그렇게 복잡한 것은 아니어서 새 냄비나 팬에 식물성 기름이나 쇼트닝을 바르고 오븐에서 구워주기만 하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잘 발달되어 있는 코팅기술을 생각해볼때 귀찮은 것임에는 분명하고 또 그러한 이유로 무쇠 주방기기들은 요즘 그렇게 쉽게 쓰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처음 그렇게 길들이기 작업을 잘 하고, 계속해서 음식 만드는데 사용해주면, 이 무쇠 주방기기들은 갈수록 기름을 먹고 길이 들어 나중에는 테프론 코팅이 부럽지 않은 non-stick 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게다가 스테인레스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두꺼워서 열 전달이 잘 되기 때문에, 일단 뜨겁게 달궈 놓으면 그 열기가 오래가고 또 고르게 전달되어 음식이 더 잘 만들어진다고들 합니다(‘만들어 집니다’ 라고 쓸 수 없는 이유는, 저도 계속 시도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이 Lodge Manufacturing이라는 회사가 개발한 식물성 기름 코팅 기술 덕분에, 요즘 나오는 이 회사의 기기들은 전부 길이 들여져 있어서 처음부터 바로 쓸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최근의 GQ에서 무쇠 팬과 이 회사의 명성을 전해듣고 하나쯤 사서 써 볼까 생각해보던 와중에, 동네 costco에서 두 개 들이 셋트를 $25에 팔길래 얼씨구나 좋다고 일단 집어들고 왔습니다. 제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리 공장에서 길을 들였다고는 하지만, 처음 음식을 만들어보니 그래도 한참동안은 조심해가면서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식이 달라붙더군요. 사실 요즘의 테프론 코팅된 냄비나 팬들을 생각해 볼때, 이 무쇠 기기들은 절대 사용자 친화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일단 재질이 무쇠에 두께가 상당하기 때문에, 작은 팬 (10.25″=약 26cm)이라고 해도 손으로 들고 음식물을 섞어 줄수가 없을 정도로 무겁습니다. 게다가 손잡이가 짧고, 팬 몸통과 한몸이기 때문에, 일단 열이 가해지면 손잡이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역시 두께 때문에 적어도 5분 정도는 가열해야만 음식이 달라붙지 않을 정도로 뜨거워지므로 많은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거기에 유지관리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미국에서는 누구나 다 쓰는(물론 우리나라도 요즘은 거의 대중화 되었죠) 식기세척기에 절대 넣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단 열이 가해진 후에는 더운 물로만 씻어야 하고, 또 씻은 후에 물기를 바로 말리지 않으면 녹이 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불편한 걸 왜 써야만 하는 걸까요? 사실은 아직 저도 모릅니다-_-;;; 그 원시적인 재질과 생김새 때문에 구이나 볶음 등등에 두루 쓸 수 있고, 의외로 깊고 또 두껍기 때문에 냄비 대신으로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여러가지로 그렇게 쓰기 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아마존의 리뷰에서는 일단, 길들여지면 음식 맛이 다르다고 하고, 또 제대로 쓰는 법을 배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니 일단은 여러가지 용도에 시험삼아 써 보면서 익숙해지도록 노력해볼까 생각중입니다. 무엇보다 음식의 맛이 좋아진다는데 한 번쯤은 시도를 해봐야겠죠.
일단 지난 주말에는 계란 열개를 깨서 도시락 반찬으로 Fritatta(일종의 계란 찜 내지는 구이로, 계란을 깨서 섞은 다음 팬에 넣고 오븐에 구워줍니다)를 만들어 봤는데, 항상 쓰던 non-stick팬에서는 어렵던 약한불로 오래 익히기가 잘 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다지 사진발 잘 받는 음식을 만들지 못해서 사진은 없지만, 주말에는 이것저것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참고로 이곳 미국 남부에서 닭튀김에 곁들여 나오는 cornbread는 베이컨을 무쇠냄비에 볶다가 그 기름위에 반죽을 부어 팬째 오븐에 구워 내는 것을 가장 전통적인 것으로 쳐줍니다. 그리고 아마 스콘도 이 무쇠판에 굽는 것이 맛있다고 해서, 팬에 삼각형으로 칸막이가 된 것도 따로 나옵니다.
# by bluexmas | 2007/08/17 12:55 | Taste | 트랙백 | 덧글(17)
(그래도, 역시나, 부러워요오오…………ㅠㅠ)
잘 쓰세요 //ㅅ//
맛있는거 많이 해드시고~ ^^
보통 손잡이를 잡는 이유가 가벼운 팬이 방정맞게 움직이기 때문이니까… 한 눈에 보기에도 묵직해보이니 그 걱정은 덜 수 있을 것 같네요;; 예전에 가마솥뚜껑 위에 지짐하던 것과 비슷한걸까요?^^;
부모님편에 조르고 졸라서 집에서 쓰던 뚝배기를 받았는데…금이 가있는 것을 발견하고 OTZ 했어요 ㅠ.ㅠ 김치찌개는 뚝배기인데…한인타운 뚝배기를 살 수도 있긴 하지만 집에서 쓰던 “정든” 뚝배기가 그리웠는데, 괜히 먼 여행시켰다가 못쓰게만들어서 미안해요. 미안해 뚝배기야 엉엉…
p.s. 그런데 궁금한게 있는데요, 구리빛이 나는 후라이팬이랑 냄비들을 볼때마다 늘 궁금한 건데, 그것도 열을 가하면 손잡이도 뜨거워지죠?
콘브래드에 관한 환상이 또 하나 깨졌습니다. 베이컨을 굽고 난 기름으로!!!! 헉!
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뭐 지는 오래 전부터 미쿡산은 별로 안 좋아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역시 물건은 유로산이나 니혼산이 쿨럭
라고는 하지만 이미 세상에 존재 하는 물건의 반 이상이 쭝궈산이라서
미쿡산도 고맙기만 해요 먼산
튼튼해보이지만 영 다루기 쉽지 않아보여요;;
특히 주부님들… 남편과 싸울때 저거 들면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무기군요..
문득 중화양수팬 사용할때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네요…(행주 없으면 절대 사용 불가)
포스팅 보니까 갑자기 지름신이…ㄷㄷ
(아…! 혹시 그걸 노리신건가요? ^_^)
笑兒님: 그러게요. 손잡이는 뭐랄까 약간 옛날스러운 것 같아요. 어차피 별로 쓸 일도 없구요. 프렌치 토스트는 잘 될까…아직 모르겠어요.
Catena님: 반갑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사실 움직이지도 않으니 손잡이가 거의 필요 없다시피 하죠. 생각해보니 가마솥 삼겹살 뭐 그런 것과 같은 이치겠네요. 처음에 가마솥 뚜껑이 나왔을때 사람들이 그 뚜껑 밑에 고기가 있는 줄 알고 달궈진 걸 들어 올렸다가 손을 많이 데었다고…
intermezzo님: 불쌍한 뚝배기 얘기를 들으니 저도 눈물이 날라고 그래요. 바다까지 건너왔는데 자기 역할도 못하고…된장찌개도 뚝배기가 최고죠. 저런 팬들이
작은 것들도 있으니(crate and barrel가면 1인용 4인치짜리 이런 것도 있어요)
그걸 사보시던가, 아니면 주철 냄비도 작은게 있으니 뚝배기 대용으로 써보세요^^
그리고 그 구리 남비는…저도 사실 냄비나 팬 종류는 세간 늘이기 싫어서 거의 안 사는 편이라서 잘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금속이라면 열이 전도되지 않을까 싶네요.
Eiren님: 그 모든게 열전도율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언제 회사에 아침 해갈 차례가 오면 한 번 시도해보려구요. 이 동네 사람들은 비스켓이나 콘브레드라면 껌뻑 죽거든요. 역시 남부라서… 팬은, 아예 꿈쩍도 안 한답니다. 작은 녀석도 제가 한 손으로 들기 버거우려고 해요.
erasehead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미국에 은근히 lifetime warranty제품이 많죠. 무슨 가방같은 것도 그렇구요. 콘브레드는 늘 베이컨 기름으로 굽는 건 아니구요. 아주 ‘정통적인’ 레피시만 그러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blackout님: 저는 그냥 stoneground 콘밀로 처음부터 반죽해서 만들곤 해요. 물론 아주 자주 만들지는 않지만… 르 크루세는 이름만 들어봤는데, 비싼거 아닌가요?
카렌님: 저도 홈피 가봤는데 헤메다 그냥 왔어요. 개 좋아하시는 분들이 꾸려 나가시는건가봐요.
Charlie님: 말씀하신 용도에는 소스팬이 더 낫지 않을까요? 확실히 얘들은 무거워서 아예 냄비로 스튜를 끓이지 않는다면 그쪽 용도로는 불편할 것 같아요. 잘 못 다루면 타기도 쉽구요.
똥사내님: 정말 아주 가뭄에 콩나듯 좋은 것들도 있어요. 차는 빼구요(미국차 너무 후져요…).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의 75%이상이 쭝궈산 아닌가요(저도 같이 먼산…)?
D-cat님: 반갑습니다^^ 네, 아직까지는 다루기 좀 어려워요. 저도 공부 및 기술 연마중이랍니다.
유성님: 그런 용도라면 호신보다는 살인용에 더 가까운 듯 해요. 아마 가정주부들도 무거워서 들어 내리치지는 못할 것 같은데요?
유클리드시아님: 잘 지내시죠? 유성님께 드린 답글처럼 완전 살인무기에요. 그나저나 중국요리에 쓰는 팬(미국에서는 wok이라 그러죠)도 손잡이가 짧거나 일반 남비와 같이 않던가요?
빈틈씨님: 제가 놀러가는 블로그들에서 많이 뵌 아이딘데…^^ 우리나라에도 수입이 되는군요. 여기에서는 저 팬들이 $15-20정돈데 우리나라에선 얼마에 파는지 궁금한데요?
핑크님: 바로 그거죠! 아직도 저 팔 가늘다고 놀리는 사람들이 꽤 돼서 일부러 무거운 걸로 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