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thing the Air without Coincidence

아뇨,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 세상에 인연이라는게 아주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또한 저에게 그런게 없다고까지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구요. 그렇다고 해서, 짐작하시겠지만, 아주 낙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또한 아니겠죠… 저는 단지 앞으로 누군가가 제 앞에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그래서 그 말을 입에 담아야만 하는 순간에 맞닥뜨린다고 해도 차마 그 말을 입에 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따름이죠. 이미 써 먹은, 그러니까 입에 담은 말인데 또 써 먹기 좀 부끄럽고 민망하지 않을까요? 이게 무슨 ‘오늘 뭘 다르게 했길래 더더욱 예뻐 보이는 걸까?’ 와 같은 공치사도 아니잖아요. 정말 마음을 담아서 해야만 하는 말인데, 이제는 입에 담기 너무 어려운 것처럼 느껴진다구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만나왔고, 또 그 때마다 인연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냐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니에요. 사람도 별로 만난적이 없지만, 그 별로 만난적 없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과연 내가 그 말을 입에 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든요. 일부는 뭐 시간이 많이 흘러서, 또 일부는 정말 그 말을 별로 입에 담았던 것 같지 않으니까. 그렇잖아요, 그런 말은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거든요. 특히 저 같은 사람은 더더욱… 그러니까 결국 모두가 다 그런 말을 했는지, 들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점에 다다라서도 만약 그게 정말 인연이 아니었는데 제가 입에 담았다면 저는 계속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겠죠. 뭐 꼭 거짓말을 한 것처럼 가책을 느껴서가 아니라, 평생 사는 동안에 쓸 수 있는 회수가 한정되어 있는 뭔가를 생각없이 낭비한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그런 세부사항들은 그렇게 중요한게 아닌 것 같구요, 저는 그냥 그렇게 느끼고 산다는 거죠. 이제 내 몫의 기회는 몇 년 전의 실수로 인해 영영 날아가 버린 것일 수도 있지만, 또 한 편으로 그렇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다시 그런 상황에 처해서 또 똑같은 말들을 입에 담고 나중에 아닌 것임이 밝혀지고 나서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제는 다시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다는 자기방어기제 비슷한 것이 욕망마저 짓누르는 단계가 된 것일까요? 뭐 그럴지도 모르죠. 하여간 다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구요.

 by bluexmas | 2007/07/13 12:49 |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basic at 2007/07/13 15:27 

원래 그런 말을 할 줄 모르는 성격이라. 나중에 부끄럽다는 생각조차 못한답니다. -_-; 뭐랄까 간질간질하달까. 말을 하고 나면 없어져버릴 것 같달까. 말이라는 게 참 쉽잖아요….

 Commented by chan at 2007/07/13 22:38 

그러니 전혀 새로운 말을 해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나세요

이를테면 남자라든가………………히..농담인거 아시죠?

 Commented at 2007/07/14 01:5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7/14 14:36 

basic님: 그래도 말이라는게 필요한 때가 많답니다^^ 눈빛만으로 알 수 있잖아, 어쩌구 이런거 다 개구라라는거, 알고 계시잖아요 -_-;;;

chan님: 너무하세요!

비공개 1님: 저는 워낙에 주변에 사람을 잘 안 달고 사는 사람이라서 별처럼 많은 상황이 어떤지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비공개 2님: 계속 맞으니까 아픈데요^^ 그리고 심각해지기 위해서 쓴 글 아니니까 심각해지실 필요 없답니다.

부끄러움에는 모두 강한 인과관계가 부록처럼 딸려 나오거든요. 그래서 그런거에요. 아, 그리고 저는 철 안 든 토끼띤데… 인터넷 검색해봤잖아요. 띠랑 나이랑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몰라서요. 아직 철 안 드셔도 될 나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Commented at 2007/07/16 14:2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7/17 12:58 

비공개님: 저의 개인사에는 Super Major Blow(or Disaster)와 Medium Major Blow가 각각 하나씩 있어서, 요즘은 뭐랄까 반은 아무 감정이 없는 불감증에 나머지 반은 오기와 뻔뻔스러움 같은 것들이 범벅이 된…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