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유랑기

언제나 디저트 와인의 맛에 호기심을 가져왔지만 그 단맛 때문에 한 번에 다 마실 수 없다는 이유로 여태껏 도전을 안 해왔던 차, 집에서 저녁 대접을 한다는 핑게로 싸구려 포트 와인을 한 병 사다가 주말에 마셨습니다.

와인의 특성상 죽을 때까지도 문외한일 수 밖에 없는 제가 간단하게 참고하는 책 ‘한 손에 잡히는 와인(시마 사원~상무-그나저나 사장은 과연 될 수 있을까요?-의 작가인 히로가네 켄시가 지었습니다. 만화와 간단한 글로 알기 쉽게 설명이 되어 있어 저 같은 무식쟁이에게는 최고의 참고서라고… )’ 의 설명에 따르면 포트 와인은 발효 도중에 브랜디를 첨가해서 단맛과 알콜 도수를 높인다고 하니, 그 단맛과 세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대강 짐작이 갑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이 책에는 이 포도주가 출하되는 항구의 이름이 Porto이기 때문에 Port Win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제 생각에는 Portuguese 내지는 그냥 항구(Port, 즉 Porto)에서 Port라는 단어를 따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위키피디아의 설명을 보면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디저트 와인이 생산되지만 오직 포르투갈에서 나오는 이 종류의 와인에만 Port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게끔 규제하고 있다는 걸로 보아, Portuguese Wine이 Port Wine이 되지 않았나 그냥 급하게 추측해봅니다(여담이지만, 얼굴에 붉게 남는 혈관종을 Port Wine 반점이라고 한답니다…).

뭐 이왕 책을 빌려 오는 김에 조금 더 보면 Port Wine의 종류에는 White, Ruby, Tawdy, Vintage 등등이 있다고 하는데, 제가 시도해 본 것은 Sandeman이라는 딱지가 붙은 Ruby Port였습니다. $13.99로 아주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같은 딱지가 붙어 나오는 것들 가운데에서도 그냥 중간 정도의 레벨이었습니다. 가게에 굴러 다니는 팜플렛이나 여기저기서 얄팍하게 주워 들은 지식으로는 치즈 케잌이나 초콜렛으로 만든 디저트들이 이 포트 와인과 궁합이 맞는다고 그랬는데, 치즈케잌은 만들기 너무 귀찮아서 초콜렛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토요일 저녁 식사가 끝난 다음에 함께 먹어 보았습니다.

일반 포도주가 보통 12.5%의 도수를 가지고 있는 것에 반해 포트 와인은 근 20%에 가까운 도수를 자랑하기 때문에, 딱 처음에만 먹고 맛 없어서 안 먹게 된다는 얼빠진 소주 ‘처음처럼’이나 별 다를 바 없이 센 술입니다. 하여간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단 맛이 강해서, 그걸 염두에 두고 설탕의 양을 줄여서 만든 초콜렛 아이스크림도 너무 달게 느껴져서 아이스크림과의 매치는 약간 실패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먹어본 느낌으로는 설탕을 레시피의 2/3정도(내지는 절반, 그렇지만 이럴 경우에는 케잌 자체의 맛이 떨어질 우려가…)만 넣은 다크 초콜렛 치즈 케잌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그건 또 다음에 손님을 치르면…

하여간 종합적으로는 너무 단맛이 강해 제 취향이 아니었으니, 저에게는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 계통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위의 사진은 밥 먹을때 반주로 곁들인 초 싸구려 칠레산 쉬라즈였는데, 말도 안되는 싸구려를 먹었음을 쪽팔림에도 불구하고 공개하는 이유는, 이것을 기점으로 안 먹으면 안 먹었지 저가 와인은 되도록 자제한다는 결심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저 와인과 포트와인, 그리고 고국이 못내 그리운 분들이 그 그리움의 눈물로 빚은 처음처럼 등등을 골고루 마셨더니 그 다음날 아침에 모든 뇌의 주름이 0.5cm정도 더 파여 들어가는 듯한 숙취두통에 눈물을… 저도 그걸로 소주나 빚을 생각입니다.

 by bluexmas | 2007/06/20 11:40 | Tast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ibidem at 2007/06/20 12:08 

sandman은 이름도 그렇고 와인병에 붙어 있는 그림도 그렇고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가 생각나네요.

저도 와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드라이한 맛에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로는 turning leaf 라는 미국 브랜드를 선호해요. 캘리포니아산 와인인데 특히 까베르네 소비뇽이 괜찮더라구요. 한국에서도 수입되는데 현지 가격이랑 많이 차이나지 않던 걸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20 12:30 

Turning Leaf는 저도 몇 번 마셔본 기억이 나요. 그 가격대의 캘리포니아 와인 가운데 아마 잘 알려진 양조장 것들은 이름값 때문에 가격이 더 비싸지 않을까 싶어요. 몇 년 전에 서울에 갔을때는 Woodbridge라고 Robert Mondavi 아니면 Kendall Jackson 최저가 레이블이었는데, 2만 7천원을 붙여 놨더라구요. 여기에서는 7.99면 사는건데…

 Commented by makondoh at 2007/06/21 00:17  

요즘 마트에서 우드브릿지는 2만원 안쪽으로 살 수 있어…로버트 몬다비에서 나오는 저가 와인이지…터닝 리프는 갤로 쪽이던가? 여튼 우리나라에도 있고…

나도 요즘 그냥 싼 와인들 마시는데 대체로 샤토 생미셸이나 콜롬비아 크레스트 같은 워싱턴쪽 와인들이 가격대비 괜찮은 듯…콜롬비아 크레스트 그랜드 에스테이트 카베르네 쇼비뇽은 특히 완소라는…ㅎㅎ

그나저나 나도 아직 포트 와인은 마셔본 적이 없는데 그 맛이 참 궁금하네…

포트 와인같은 강화 와인들은 100년씩 묵은 것도 맛나다던데…비싸겠지?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21 12:59 

웃브리지는 절대 먹지 마라…너무 싸서 머리 깨진다. 지난번에 샤토 생미셸 리즐링이 너무 맛있어서 다른 종도 먹고 다시 리슬링 한 번 더 먹어야 되겠어. 그래봐야 10불 정도? 코스트코에서 야생홍합 파는게 있던데, 그걸 사다가 끓여서 같이 먹어볼라구. 포카치아나 치바타를 구워서 곁들이고… 사실 요즘의 지구 온난화가 와인 산지에도 영향을 미쳐서, 캘리포니아 북부지방이 원산지인 포도가 요즘은 더 위로 많이 올라 갔다고 하더라구. 콜롬비아 크레스트 다음에 한 번 시도해봐야겠네… 이번 주에는 지난 주에 들어온 켄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피노 누와(헉헉…뭔 이름이 이렇게 길어)를 먹을 생각인데, 무슨 음식이 잘 맞을까 찾아봐야지… 그리고 포트와인 겨울쯤에 갈 때 한 병 사가지고 갈테니 같이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