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rek 3 (2007)- 기대만큼 제대로 기대 이하
작년에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던 픽사의 애니메이션 ‘Cars’를 보고는 너무 실망해서, 어쩌면 이제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의 시대는 한물 간 것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거의 한 달에 한 편 정도씩 애니메이션이 극장으로 쏟아지는 이 마당에 한 물 갔다는 제 표현이 적절한 것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흥미의 정도를 따지자면 확실히 한 물 갔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어제 개봉한 세 번째 슈렉은 그 저의 생각을 아주 정확하게 뒷받침해줍니다.
작년에 보았던 Cars가 결정적으로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스토리의 빈약함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Pixar의 만화영화들을 좋아했던 이유는 어딘가 모르게 풍기는 주류로부터의 삐딱함이었는데, Cars의 스토리 줄기는 어찌 보면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Good Ol’ Days였으니 이라크를 둘러싸고 풍기는 분위기를 놓고 생각해보았을때 왠지 시류에 영합하는 듯한 스토리 자체가 픽사답지 못하다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그 스토리 자체마저 너무나 단편적이어서 개인기를 능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슈렉 3편은 Pixar의 작품도 아닌데다가 전작 두 편에서의 분위기를 그대로 물려 받았으니 일단은 안전빵인 듯 싶지만, 줄거리의 힘은 결국 전작 두 편이 가져왔던 흡인력을 발산하는데는 제대로 실패했다는 생각입니다. 다들 아시는 것 처럼, 슈렉 이야기의 뼈대는 전래 동화의 패러디여왔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더 왕의 전설을 스토리의 중심으로 차용합니다. 피오나 공주의 아버지인 개구리 왕이 건강 악화로 세상을 등지면서 슈렉과 아더 왕자를 계승자로 지목하는데, 단순 소박한 늪에서의 삶을 계속해서 그리워하던 슈렉은 자신이 왕이 되는 상황을 피하고자 아더 왕자를 찾아 나서고, 그 와중에 버림받은 동화 속 왕자님은 자신처럼 버림받은 동화들 속의 악역들을 한데 모아 ‘겁나 먼 왕국(Far Far Away, 참 시의 적절한 것 같으면서도 1년만 지나면 촌티가 팍팍 느껴지는 번역입니다. 이미도 씨 작품?)’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다는 것이죠.
이렇게 줄거리를 늘어 놓으면 이번 3편도 재미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핵심인 아더 왕의 전설이 캐릭터만을 빌어다가 희화화하는데 이용될 뿐, 극중에서 그 어떤 긴장감도 불어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설 속의 용맹했던 아더 왕이 loser였다는 설정은 참으로 웃기지만, 그 설정은 거기에서 그치고 아더 왕 내지는 왕자는 이름과 존재감 뿐, 역할이 없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슈렉이니 만큼 슈렉보다 크게 보이는 등장 인물은 필요 없겠지만 왕위를 계승하기 싫은 슈렉의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빚어낸 화신인 듯한 아더 왕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어서 대체 왜 아더 왕의 전설을 차용해다가 이 정도 밖에 써 먹지 못했는지 픽사의 상상력에 의문을 안 가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전래 동화를 차용한 줄거리 전개상, 슈렉은 어느 정도 로드 및 버디 무비가 될 수 밖에 없는데(모험담과 주인공을 따르는 친구 등등…), 이 모험담(이번 편에서는 당연히 아더 왕자를 찾아 데려오는 과정이겠죠)에서도 역시 아무런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보고 웃자고 만들어 놓은 만화 영화에서 함량 미달인 줄거리를 걷어 낸다면 결국 남는 것은 썰렁한 개인기 뿐, 적절한 수준의 슬랩스틱 및 화장실 유머만이 남아 그저 5초짜리 웃음들만을 선사해주는 슈렉의 세 번째 이야기는 결국 기대했던 것처럼 제대로 기대 이하여서 기대가 충족되었다는 사실에 실망하게 만드는 전작 두 편 보다 함량 미달인 완결편(이렇게 함량 미달인 것으로 봐서 다음 편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모르죠… 아이들도 생겼는데 어떻게 될지)이었습니다. 조조에 5불 내고 보면 딱 맞을 정도였으니까요.
P.S: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새끼 오거들이 등장하는데, 솔직히 귀엽기 보다는 징그럽더군요.
# by bluexmas | 2007/05/20 12:25 | Movie | 트랙백 | 덧글(7)
피오나가 그렇게 빨리 임신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또 스토리나 다른 모든 것들이 너무 시간적 흐름에만
충실하려고 하는것도 안타까운 부분이긴 하네요…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님: 뭐 광고에도 나오지만 ‘애플파이 베이스볼 쉐볼레’ 로 대표되는 미국의 ‘전통(역사가 500년도 안 되는 나라가 무슨 전통타령이래요? 참 내…)’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Cars같이 말도 안 되는 만화가 나오는 것이죠. 사실 NASCAR를 비롯한 레이싱은 Redneck들의 취미잖아요. 복고풍 자동차와 레이싱 스트라이프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다 그렇죠.
그리고 저 픽사랑 드림웍스 혼동한 것 맞아요. 원래 쓰려던 내용은 제작사를 불문하고 그래픽 애니메니션이 참신해지는 시대는 가지 않았나, 였는데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 뭡니까,헤헤…Ratatouille의 예고편은 저도 봤는데, 전형적인 미국식의 유럽 비꼬기만 아니라면 나쁘지 않겠죠.
오늘도 아침 열 시에 극장에 갔는데 다들 애들을 데려와서… 과연 스파이더맨과 슈렉이 애들을 위한 것인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이런 패러디와 능글맞음으로 가득찬 영화를 보여주려고 아침 일찍 애들을 데려와서 트랜스팻이 가득한 팝콘과 High Fructose Corn Syrup이 든 탄산 음료를 먹이는 부모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