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병을 부추기는 사람들
학교에 있을때는 전혀 몰랐었는데, 회사에 다니고 나니 대체 미국이라는 나라의 연말 분위기가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친듯한 쇼핑과 여행 계획…저는 남자치고 비정상적으로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지난 주 이후로는 쇼핑몰 근처도 가지 않았고, 가족이 없기 때문에 여행계획 따위는 전혀 짤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그저 쉬는 날이라는 것 밖에는 아무런 개념이 없었는데, 자꾸 사람들이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가족들 만나러 가니?’ 라고 계속해서 물어보기 시작하자 드디어 뭔가 생각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 우리나라에 가족이 있구나, 라구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고,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있는 가족들이 이런 시기에 제가 돌아가야 할 가족들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루에도 열 번도 넘게 물어보고, 저는 저의 대상없는 향수병이 부추겨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뭐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다 컸으니 딱히 가족이랑 같이 지내기보다는 누군가 만날 수 있는 친구를 만나 술이나 먹거나 뭐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한 연말을 보내겠죠. 시간이 지날 수록 가격이 오르는 메뉴판과 함께…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 해를 거듭하며 살다보면 대체 사람이 가득찬 거리에서 휩쓸려 다녔던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는지 새삼 다시 깨닫게 됩니다. 가끔 울려퍼지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제 심사를 뒤틀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너그러워 질 것도 같습니다.
하여간, 계속해서 저는 준비해놓은 대답을 쏟아내기에 바쁩니다. ‘나도 가고 싶지만 이번에 나가면 비자를 받아와야 되는데 그게 시간이 많이 걸려서 지금은 나가기 그렇고, 내년 4월께나 나갈거라’고. 그리하여 저의 연휴 계획은 언제나와 같이 ‘hanging out, chiling down’ 이라구요.
25일 아침쯤, 저는 아마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찬 바람이 들어오는 베란다 문을 1/4쯤 열어놓고 몸을 내놓지도 들여놓지도 않을채 중얼거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나 없이도’ 라구요.
의식하고 살지 않는데 때때로 부추기는 사람들이 얄미워지는 때입니다.
# by bluexmas | 2005/12/22 15:16 | 트랙백 | 덧글(2)
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위로의 말인줄 잘 알지만.
영화결산 2탄 은근히 기다리는 중.
근데, 보신 날짜를 따로 메모해두신 건가요, 아님 영화표를 모으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