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호텔 / 델리카한스] 프리미엄 딸기케이크-맛있고도 맛없는
나는 한 이십 여년 전의 델리카한스를 좋아했다. 지금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에서 호텔 로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공간 바로 안쪽에 있었는데, 머핀의 맛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기억이 맞다면 델리카한스도 ‘피에르 가니에르 베이커리’까지 포함해 여러 변화를 거친 다음 현재의 모습으로 운영된지 세월이 좀 흘렀을 것이다. 전체적인 인상은 고급을 추구하고 있고 가격대와 재료, 심지어 완성도까지도 어느 정도 죽이 맞기는 하지만 보수적이고 재미 없다는 느낌이다. 특히나 케이크류가 그래서 프티 가토인데다가 얼핏 보기엔 예쁘고 솜씨도 나빠 보이지 않지만 먹어보면 ‘이것이다’ 싶은 액센트 혹은 포인트가 없으며 특히 후각적인 요소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그래서 그렇게 자주 찾게 되지는 않는 가운데 최근 트위터에서 프리미엄 딸기케이크 이야기가 나와서 먹어보았다. 혼자 큰 것 한 판을 다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25000원짜리 작은 것을 샀는데, 일반 소비자의 탈을 쓰고 먹는다면 맛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관건은 생딸기와 크림의 조합. 일반 크림으로는 특히 질감 면에서 생딸기의 단단함 혹은 설컹거림과 어울릴 수 없다는 사실을 고려했는지 화이트 초콜릿 가나슈를 만들어 일정 수준의 단단함을 주었다.
한편 화이트 초콜릿은 규제가 없기에 제품마다 양태가 굉장히 다양한데, 아주 일반적으로 보더라도 딸기와 잘 어울리는 맛과 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특히나 올해처럼 딸기가 비싸면서도 맛이 없는 해에는(이 케이크의 딸기도 이런 가격대에서 기대할 수 있는 만큼 특출하지는 않았다) 생딸기와 크림의 자체의 조합만으로도 그럭저럭 먹을 수 있다. 말하자면 요즘 추세인, 딸기와 케이크의 분량이 역전된 괴이한 것들 가운데서도 최선이라 할 수 있는 균형을 찾았다는 말이다.
일반 소비자라면 이렇게 느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나는 직업인이므로 평가를 다르게 할 수 밖에 없다. 가격과 이미지 등에 비해 접근이 너무 보수적이고 재미가 없다. 이정도의 가격대라면 애초에 접근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천 가지쯤의 가능성 가운데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한 느낌이랄까. 다른 케이크들의 운명도 사실은 거의 대부분 마찬가지여서 생딸기+크림의 조합이라면 먹을때 잠시 즐거울 수 있지만 그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애초에 파티셰의 한 손을 묶어 놓고 걸작을 내놓으라고 하는 셈이기 때문에 크게 달라질 여지가 없다. 딸기 과수원 옆에 목장을 운영해서 각각에서 얻어낸 재료를 바로 현장에서 공수해(닭은 아마도 목장에서 키우고 있을 것이다) 케이크를 만들더라도 엄청나게 맛있을 가능성은 없다. 두 재료는 원래 태생적으로 어우러지지 않는다.
이런 케이크들이 범람하는 것은 일단 소비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모르는데 안다고 철썩같이 믿으니 실무자가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소비자들이 요즘 너무 많은데 정말 최악이라 본다. 보기엔 그냥 아마추어일 뿐인데 자각은 마치 프로처럼 하고 있는 부류 말이다. 아는 체는 하고 싶은데 욕은 먹고 싶지 않으니 굉장히 괴상한 포지션을 차고 앉아 있다.
그런데 한편 실무자 또한 일정 수준의 교육 및 수련을 채 마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개념적인 완성도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냥 케이크가 케이크처럼 생긴 걸 보기도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파는 곳은 많아졌지만 수준은 더 낮아진 것 같다. 만약 이런 수준이 2024년의 한국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 우리는 슬퍼해야 한다.
*다 먹은 다음 입천장을 코팅하는 식물성 크림의 느낌은 꽤 불쾌하다. 이 가격대에서 식물성 재료의 사용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실무자들은 그거 없이는 못 만들 거라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