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의 인지부조화적 비빔밥론
얼마 전 야당에 30대 당대표가 취임했다. 그는 취임 수락문에서 비빔밥을 예로 들며 공존과 개성을 언급했다.
“비빔밥을 생각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비빔밥이 가장 먹음직스러운 상태는 때로는 10가지가 넘는 고명이 각각의 먹는 느낌과 맛,
색채를 유지하면서 밥 위에 얹혀있을 때입니다.
상추 잎은 아삭한 먹는 느낌을 유지해야 하며 나물은 각각 다르게 조미해야 합니다.
마지막에 올리는 달걀은 노른자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올려놓아야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비빔밥의 재료를 모두 갈아서 밥 위에 얹어준다면
그것은 우중충한 빛일 것이고 먹는 느낌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우리가 비빔밥의 고명들을 갈아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스테레오타이핑,
즉 “다움”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휴, 여전히 바뀌지 않았군.
사람들은 아직도 비빔밥에 대한 인지부조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물리적으로, 억지로 섞이는 상태와 화학적으로 어우러져 섞이는 상태를 구분 못한다. 비빔밥의 정체성을 완성시키기 위해 이름처럼 비비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밥은 곤죽이 되어 버리고 나물의 아름다움은 고추장의 색깔과 맛에 파묻혀 버리고 만다. 계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런 상태는 어우러졌다(blend)기 보다 단순히 섞인(mix) 상태에 가깝다. 밥에 다른 식재료들이 파묻힌 상태에는 공존이나 개성이 없다. 압박만이 있을 뿐이다.
심지어 이는 바로 윗 단락에서 언급한 ‘샐러드 볼’의 상태와도 다르다. 샐러드는 채소 위주로 만들기 때문에 재료에 힘을 주어 섞지 않고 가볍게 버무린다(toss). 게다가 전체를 아우르는 ‘바인더’ 역할은 드레싱이 혼자 맡는다. 반면 비빔밥은 샐러드 드레싱의 호환 개념인 고추장 외에도 밥의 전분인 아밀로펙틴이 자아내는 끈끈함이 사실 더 강한 바인더 역할을 하는데, 우리는 밥을 꾹꾹 눌러 비빔으로서 이를 한층 더 악화시킨다. 말하자면 끌어내지 말아야 할 상태까지 습관적으로 끌어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비빔밥을 샐러드 볼과 같은 수준의 개념으로 다루고 싶다면 ‘버무림밥’이 되어야 하겠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당장 일본식으로 가볍게 비벼 먹는 문화도 이상하게 여기는 판국이니 말이다.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여당 당대표의 비빔밥론은 틀렸다. 한식에서 재료가 잘 어우러지는 음식을 꼽으라면 나는 차라리 고기국물류를 선택하겠다. 무엇보다 음식의 정체성에 화학적 변화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런 비빔밥의 인지부조화에는 이어령 선생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는 비빔밥을 오방색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의 음식이라 규정하며 격을 높여 주었지만, 사실 그런 식으로 재료의 색깔이 조화를 이루는 음식은 세계 어느 식문화에도 존재한다. 서양의 파인 다이닝만 하더라도 각 요소들을 형태와 색이 살아 있는 채로 조리하고 소스로 어울러주는 가운데, 물리적으로 섞지 않고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먹기 때문에 비빔밥에 비하면 갓 나왔을 때의 아름다움을 덜 잃는 편이다.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있고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특별한 아름다움은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확보한 다음에 좇을 수 있다. 비빔밥이 음식으로서 아름다움을 갖췄다면 사실 보편적인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비빔밥이 현재의 상태로 특별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왜 그렇게 명멸하는지(ephemeral) 고민을 좀 해볼 필요가 있다.
비빔밥이 열등한 음식이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기존의 것을 덥석 받아들이기 보다는 조금 더 고민하고 결을 세심하게 나눠 헤아려 볼 때 비판적 수용이 가능하고 발전의 여지는 한층 더 커진다. 한식이, 비빔밥이 외국 특히 서양에서 인기를 끈다고 해서 (개념적) 단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음식에 대해 논하는 이들이 고민도 하지 않고 세심하게 결을 나누지도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진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음식 평론가인 나는 저렇게 인지부조화적으로 비빔밥의 예를 드는 취임 수락문을 읽으며 ‘잘 될 것 같지는 않군’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가까이 있다고 모두 다 속속들이 잘 아는 건 아니고, 그렇게 당연시 여길 때 대상은 점차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음식이 너무나 그러하다. 모두가 음식에 대해 너무나도 어설프다.
*사족: 그는 바로 며칠 전에도 ‘계륵’과 닭갈비를 혼동한 발언을 했다. 계륵은 진짜로 먹잘것이 없는 닭의 갈비 부위이고, 닭갈비의 갈비는 닭을 소나 돼지의 갈비처럼 포를 떠 양념하는 조리 형식을 의미한다. 확실히 그는 음식에 대한 이해가 낮은 것 같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