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너츠의 절규를 들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서울 모처에서 도너츠를 먹었다. 유리 케이스에 견본만 모셔져 있는 도너츠는 일단 너무 컸고 빵은 무겁고 질겼다. 포크는커녕 나이프로도 잘 썰리지 않는 도너츠라니, 실로 놀라웠다. 도너츠야말로 오리털베게처럼 폭신폭신하고 가벼운 발효빵의 대표주자 아닌가. 간신히 썰어 씹어 삼키는데 뱃속으로 납덩어리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해가 질 때까지 뱃속에 들어간 도너츠의 절규를 들었다. 미안해요오오오 나는 원래 이런 음식이 아닌데에에에에. 위장이 꼬이는 기분에 괴로웠다. 사실은 위장보다 뇌가 꼬인 것이겠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그저 못 만든 빵이 아니었다. 분명히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초점이 ‘사진발’에 맞춰져 있었다. 색깔이 예쁘지만 끈적거리는 아이싱, 굽지 않아 맛도 없고 질기며 이 사이에 끼는 코코넛과 딱딱한 아몬드. 그리고 혼자 다 먹기엔 부담스럽고 둘이 먹기엔 모자랄 크기까지. 음식 아닌 오브제의 미학을 온 몸으로 품고 있는 도너츠였다.

우리는 음식이 음식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다. 요즘의 음식은 패스트패션이나 다름 없다. ‘인스타그래머블’해서 이처럼 멋진 나의 경험을 남기고 자랑하는데 시각적인 방증이자 소품으로 쓰일 뿐이다. 설탕으로 조각도 만드는데 눈으로만 먹는 음식이 존재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눈으로 밖에 못 먹거나 눈으로는 못 먹는 음식, 이도저도 아니면 눈으로도 입으로도 못 먹는 음식만이 늘어나기 때문에 좌절한다. 얄궃게도 비가 내려 하늘도 울고 도너츠도 울고 나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