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인머스캣의 몰락
샤인머스캣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어느 날 지갑을 활짝 열어 젖힌 채로 백화점에 갔다. 가장 비싼 샤인머스캣을 살 심산이었다. 요즘 샤인머스캣의 상태가 나쁘다는 여론에 ‘제철에 제대로 된 것을 먹으면 괜찮다’는이야기를 들은 뒤였다. 과연 그럴까? 정말 순수하게 궁금했다. 그렇게 한송이 정가 6만원이 넘는 걸 할인가 2만 5천원에 사왔다. 정가에도 사왔을사냐고? 물론 그렇다.
하지만 맛을 보니 물음은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맛, 좀 더 정확하자면 완성도가 가격이 아닌 종에 달린 것 같다는 인상을받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샤인머스캣이라는 과일 자체가 실패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과육은 엄청나게 크지만 무르고껍질에도 향이 전혀 없다. 물컹거리는 가운데 달지도 시지도 않고 밍밍하다.
샤인머스캣은 어쩌다 이런 처지까지 몰락한 걸까? 비싼 과일이 새롭게 등장할 때마다 ‘이것이 농가의 새로운 희망인가’라고 생각한다. 다양성이 부족한 가운데 맛의 표정이 비슷비슷한 과일의 생태계에서 새로운 과일이 비싸기까지 하다면 생산자에게도 큰 보탬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무섭다. 예외도 있겠지만 많은 과일이 빠르게 다양성 결핍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개성을 잃고 엇비슷해진다. 눈을 감고 먹었다면 나는 이 과일이 무엇인지조차 맞출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송이에 2만원 아래의 샤인머스캣이 드문 가운데, 모두가 이런 맛을 지녔을 거라 생각하면 걱정돼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이 거품은 또 몇 년 만에 폭싹 꺼져 생산자에게 시름을 안길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