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마블-설구운 빵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마켓 컬리에서 주문했는데 깜짝 놀랐다. 이렇게 설구운 빵을 팔다니. 파리한 겉면의 색깔만 봐도 속살이 어떨지 짐작이 가지만 맛을 보니 한층 더 가관이었다. 익지 않은 밀가루 냄새가 풍기는 한편 축축하고 탄력도 없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밀이 쌀에 비해 소화가 안 된다는 잘못된 믿음이 퍼져 있는데, 바로 이런 빵 탓이다.
크루아상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밀가루 반죽 사이에 버터를 켜켜이 넣어 만드는 빵은 잘 구워야 정체성이 살아난다. 버터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핵심인 켜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특유의 조직 및 질감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이 빵의 조직은 간신히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가 손을 대면 그저 푸석하게 떨어져 버린다.
다들 담합해서 그러나 싶을 정도로 한국에서 빵은 인기를 얻을 수록 색이 옅어진다. 이제 발을 끊은 밀도의 빵은 마지막엔 거의 떡 수준으로 파리했다. 밀가루 외에도 설탕부터 버터 등 각종 부재료를 상대적으로 많이 써 만드는 빵의 색이 이런 수준이라면 의도적으로 덜 굽고 있다는 생각 밖에는 할 수가 없다. 인터넷에서 ‘danish bread’를 검색해 나오는 이미지를 무작위로 살펴보면 차이가 확실히 드러난다.
어제 받아서 일단 색깔에 놀랐고, 그 색깔보다 더 먹을 수 없는 상태여서 한 겹 더 놀랐다. 그렇게 두 쪽 간신히 먹고 빵은 고스란히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그냥 못 구웠다면 그런가보다 할 텐데, 버터 100퍼센트도 아니고 마가린을 썼다는 빵 반 덩이가 8,500원이다.
서울의 빵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며 그것도 2위라는 뉴욕의 두 배라는데, 그에 맞는 품질을 우리는 누리지 못하고 있다. 비단 이 빵 뿐이 아니라서, 요즘은 모양이 제대로 잡히고 내부에 터진 것처럼 큰 구멍이 나지 않은 식빵을 찾기가 어렵다. 밥이나 떡, 국수의 현실도 그다지 좋지 못한 걸 보면 우리는 확실히 탄수화물의 수준 향상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재료와 쓰임새에 상관 없이 모두 숨을 쉬어본 적이 없는 덩어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