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당 버블티 버블
저녁 열 시가 넘은 시각에도 명동의 타이거 슈가 매장의 줄은 짧지 않았다. 메뉴도 적고 주문도 금방 이루어져 빨리 처리된다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내 몫의 흑당 버블티를 받아드는데는 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타피오카 펄의 크기가 두 종류이고, 둘 다 설탕시럽에 조렸으며 기존의 버블티보다 좀 더 부드럽게 익혔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전반적인 인상은 ‘그냥 많은 것 가운데 하나’였다. 유지방을 업은 흑설탕의 맛과 향이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나, 새롭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또한 세간의 평과 맞아 떨어지려면 단맛도 흑당 시럽의 향도 좀 더 강해야 마땅하다.
어쨌거나 흑당 버블티의 인기는 엄청난 듯 보인다. 지지난 주에는 이틀 연속으로 다른 매체에서 의견을 구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어떤 음식 또는 사안으로도 그랬던 적이 없는지라 흥미로왔다. 실제로 타이거 슈가 매장에서 을지로 입구 지하철 역으로 가는 433미터에서도 한 블럭마다 곧 문을 연다는 흑당 버블티 가게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물론 대만에서 들어온 브랜드만 흑당시럽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니 국내 프랜차이즈도 열심히 무엇인가를 내놓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건 또 얼마나 오래 갈까? 이제 어떤 음식이 폭발적인, 말하자면 ‘국제시장’이 천몇 백만의 관객을 동원한 형국과 비슷한 인기를 끌면 나는 두려워진다. 어떤 쪽으로 생각해보아도 지속가능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만의 대표적인 브랜드 한두 곳만 주요 지역에 매장을 연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은 벌어질 수가 없다.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하면 누구라도 노를 젓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 배가 결국 물보다 많아지니 바다는 곧 땅으로 전락한다. 그런 가운데 매체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유해함 등을 부각시키는 기사를 내보내 쇠퇴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다. 결국 언제 유행이 있었느냐는 듯 고개를 내밀었던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
이런 사이클 속에서 중간 지점으로 돌아가는 음식은 거의 없다. 맛만 놓고 보면 어떻게든 들어갈 틈새가 있는데도 아예 종적을 감춰버리는 것이다. 흑당 버블티도 단맛+지방의 조합이므로 한국에 널린 매운 음식, 또한 요즘 인기인 마라의 디저트로도 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현재 매운맛의 맥락에서는 커피 배리에이션 음료보다 더 효과적이라 본다. 그러나 과연 한 번 부풀어 올랐다 터진 음식이 일상의 좌표 위에 안착할 수 있을까?
영화 ‘기생충’에서 경제적 몰락의 단초를 제공하는 빌미로 등장하는 대만 카스테라는 이제 전국에 다섯 군데의 매장만 남았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이나 일반 마트에서 카스테라를 비롯한 계란 바탕의 빵이 흔히 팔리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똑같은 걸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수준이니 존재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만 사라졌다. 호떡이 길거리 음식에서 마트의 믹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태로 팔리고 있는 현실과 극명하게 비교가 되는데, 음식 자체를 놓고 본다면 그래야 될 이유가 없다. 둘 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음식인데 자리를 잡은 시기에 따라 생사가 너무 극명하게 갈린다.
그래서 결국 모든 새로운 것들이 유행으로 한 차례씩 쓸고 지나가면 먹던 것만 먹는 황폐함의 항상성만이 유지된다. 호떡도 대만 카스테라도 흑당 버블티도 생각날 때마다 먹을 수는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데 무엇이든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호떡만 남는다. 이제 제발 좀 한국을 떠나면 좋을 생크림 케이크도 같은 팔자를 누린다. 흑당 버블티의 버블은 또 어떤 피해 사례를 남기며 터질지, 궁금하고 싶지 않은데 벌써부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