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학교 스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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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학교’라는 곳이 있다. 말 그대로 직장인들의 퇴사 이후 삶에 대한 준비를 도와준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냥 학원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회사를 다니기 힘들어 퇴사를 고민하는 이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사업이라니. 많은 요인이 얽혀 퇴사를 고민하겠지만 결국 관건은 보수일 거라 생각하는지라 한편으로는 이러한 사업의 정당성을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과연 그들에게 돈을 받고 정말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한 비전을 보여줄 수는 있는 걸까?

그런 가운데 아무래도 전업으로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인지라 ‘작가 양성 과정’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퇴사 이후 작가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길을 보여준다는 말일 텐데, 일단 경험자로서 그런 길은 불가능에 가깝도록 존재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라 누군가가 정말 돈을 받고 저런 것들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다.

여러 갈래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장 어디엔가 무엇이든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건 가능할 수 있다. 어떻게든 찾다 보면 내 글 한 편 들이밀 수 있는 틈새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즉 직장에 다니는 수준으로 돈을 버는 것은 별개이다. 한편 직장이 제공하는 정말 최소 수준의 복지 같은 것과 작별하는 순간부터 보험료 상승 등 온갖 요인으로 생활비가 늘어나므로 사실은 퇴사 전 급여 수준으로 돈을 번다 해도 생활 유지는 어려울 수 있다. 물론 그런 복지의 체계-이를테면 4대 보험-의 박탈은 완전히 별개의 난관이다.

또한 그런 수준으로 돈을 번다해도 퇴사와 동시에 이루어질 수는 없으므로 어느 시점까지는 번 돈을 까먹으면서 버텨야 한다. 한두 달로는 어림도 없고 최소한 6개월에서 1년은 걸릴 수도, 아니면 아예 그런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정말 최선의 경우로만 풀려서 글 써서 받는 돈으로 생활이 가능한 전업 저자가 당장은 된다고 하더라도 정말 벌이만을 위한 글쓰기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모색할 수 없다. 자신에게 세계(관)이 있는지 일단 확인 및 규명을 하고 모든 돈벌이의 기회를 최대한 구축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UNADJUSTEDNONRAW_thumb_991c과연 이런 세계의 확인 및 규명이 돈을 받고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일까? 퇴사의 경험을 포함한 ‘나의 커리어 체인지’ 그 자체는 이미 희소성이 없어졌으며, 있더라도 애초에 지속가능성이 없는 세계이다. 또한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분야인 ‘에세이’를 통한 사변의 계발 및 유통도 장벽이 낮은 만큼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가르치는 사람은 과연 이걸 알고 돈을 받는 걸까? 물론 그는 알든 모르든 큰 상관이 없을 것이다. 이미 자기 자신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글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을 테니까. 몇몇 학문 혹은 산업의 분야에서처럼 실질적인 생산자는 시장으로 배출되지 않고 피라미드처럼 지망생을 가르쳐서 일단 자신이 돈을 벌고 보는 형국을 만든 것이다.

정확하게 다루지도 않았으면서 ‘퇴사학교 스콘’을 계속 읊다 보니 조롱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며칠 전 드디어 사왔다. 이것이 바로 ‘퇴사학교 스콘’이다. 퇴사학교와 스콘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퇴사학교에 제과제빵 과정이라도 있는 건가? 최근에는 보지 않았는데 없을 것이다. 그 정도의 노력과 설비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 손을 댈 이유가 없을 테니까. 다만 이것을 볼 때마다 늘 생각이 났다. 과연 만드는 사람은 누구에게 이걸 배웠을까? 정말 자기 빵을 만들어 파는 실무자가 아닌, 소위 ‘클래스’를 운영해서 먹고 사는 사람에게 ‘창업 속성 과정’ 같은 것을 몇 편 들은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빵을 스콘이라 믿고 만들 수가 없다. 영국식과 미국식 스콘은 생김새도 접근법과 맛도 다르지만 그래도 공통점은 있다. 숏브레드 반죽을 접고 겹쳐 펴는 과정을 몇 번 거친 뒤 자르거나 따내서 확실한 모양을 잡아 준다. 그리고 이 단계가 전후, 즉 밀가루 등을 준비해서 버터를 비벼 넣고 반죽을 만들고 또한 구워 내는 나머지 공정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 따라서 이 단계가 없다면 무엇이라 부르든 음식으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볼 수 밖에 없고, 특히 ‘스콘’이라는 이름은 아예 붙일 수가 없다. 미국식 비스킷 가운데서도 가장 쉬운 드롭 비스킷만이 이런 방식, 즉 반죽을 모양을 잡지 않고 계량컵 등으로 퍼 팬 위에 올려 구워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했다. 과연 만드는 사람은 이것이 스콘이라 부를 수 없는 상태라는 건 알까? 만약 알고 있다면 언젠가는 자기 계발을 통해 스콘 같은 스콘을 만들 수 있게 될까? 의욕이 있더라도 가게를 유지하는 사이에 계발의 짬을 낼 수 있을까? 아니라면 피로를 느끼지 않으며 이런 스콘을 언제까지 만들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3년, 5년, 10년의 세월을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가운데 누가 먼저 이 스콘에 피로함을 느낄까? 그리고 무엇보다, 대체 이런 걸 누가 돈을 받고 가르치며 누군가의 인생에 끝까지 남을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리라고 부추기는 것일까? 그런 부류가 바로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