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학교 스콘과 이천 원짜리 아메리카노
작년 가을, 동네에 뜬금 없이 빵집이 생겼다. 파리바게트 같은 프랜차이즈에서 일한 이가 만드는 듯한 백만 가지 빵을 파는 곳이 아니고(그럼 차라리 나았으리라), 오랜 세월 동안 쌀뜨물에 우려 색과 맛이 완전히 바랜 킨포크를 덕지덕지 바른 인테리어에 퇴사학교에서 속성 코스로 한 달 정도 배워 구운 것 같은 빵을 파는 안타깝고도 비참한 곳이었다. 30대 중후반의 남성이 어른 주먹만한 드롭 비스킷을 ‘스콘’이라 이름 붙여 파는 것을 보고 나는 최대한 빨리 이사를 가고 싶어졌었다. 빵을 사먹어 본 뒤 생각은 한층 더 강해졌다.
그리고 약 한 달 전, 안타깝고도 비참한 빵집의 건너편에 카페가 새로 문을 열었다. 숯불 직화 삼겹살집과 참치집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은 이곳은 조금 더 선명함이 살아 있는 킨포크의 이미지를 내세우며 아메리카노를 2천원에 팔고 있었다. 삼겹살집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탓에 잘 보이지 않는 내부에서 빵집 주인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없던 관심이 갑자기 생겼다. 저렇게 젊은 사람들이 2천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팔아서 과연 무엇을 얻으려 하는 걸까. 그리하여 사먹어본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두 모금만에 하수구로 직행했다.
농장에서 직송한 신선한 재료로 만드는 샌드위치입니다. 대량 구매를 원하실 때는 미리 예약해주세요. 냉장고에 진짜 음식이 아닌 견본처럼 한 점씩 덜렁 놓여 있는 샌드위치가 두 모금만에 하수구로 직행한 커피와 겹치며 나는 심경이 복잡해졌다. 그러니까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2천원짜리 아메리카노와 잘 만들고 싶어도 능력이 없어서 그럴 수 없는 샌드위치에 팜투테이블 딱지를 붙여 팔아서 과연 무엇을 얻으려 하는 걸까? 권리금 차액? 쇠락하는 잡지 등의 취재? 브런치/퍼블리의 수기 연재? 혹시…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소득? 과연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가능한 게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또 뭐가 달라질까?
갓 문을 열어 인테리어부터 커피 그라인더까지 모든 것이 아직 반짝거리는 실내에서 커피를 기다리는데 정말 0.1초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 밉고 싫고 짜증나고 꼴보기 싫어서? 전혀 아니었다. 마치 내가 가게를 차리기라도 한 양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출발점이 이천 원짜리 먹을 수 없는 아메리카노나 퇴사학교에서 배운 스콘이라면 다음 지점은 과연 어디인가? 다음 지점이 과연 있기는 한 걸까?
혹시 있다면 그것은 마실 수 없는 이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십 년 동안 팔기일까, 아니면 마실 수 있는 사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로 업그레이드 되기일까? 퇴사학교 스콘은 과연 제대로 된 모양이라도 갖추는 나날이 오기는 올까? 주인은 과연 자신이 만드는 것이 스콘이라 보기 어렵다는 사실은 언젠가 알게 될까? 정말 이런 일을 이런 수준으로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대체 음식의 어떤 가치가 이들에게 가게를 차리게 만들었을까? 나는 왜 내 코가 석자인데도 남의 인생을 가지고 이렇게 감정이입을 하고 앉는 걸까? 결국은 내가 가장 한심한 인간 아닐까?
그리고 어느 날, 퇴사학교 스콘의 빵집에 추가메뉴로 식혜가 등장했다.
1 Response
[…]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했다. 과연 만드는 사람은 이것이 스콘이라 부를 수 없는 상태라는 건 알까? 만약 알고 있다면 언젠가는 자기 계발을 통해 스콘 같은 스콘을 만들 수 있게 될까? 의욕이 있더라도 가게를 유지하는 사이에 계발의 짬을 낼 수 있을까? 아니라면 피로를 느끼지 않으며 이런 스콘을 언제까지 만들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3년, 5년, 10년의 세월을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가운데 누가 먼저 이 스콘에 피로함을 느낄까? 그리고 무엇보다, 대체 이런 걸 누가 돈을 받고 가르치며 누군가의 인생에 끝까지 남을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리라고 부추기는 것일까? 그런 부류가 바로 최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