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보건옥-불고기의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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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방이 별로 없는 부위를,

2. 다진다 싶을 정도로 얇게 저며서,

3. 단백질의 분해를 촉진하는 간장에 재운

불고기는 웬만하면 퍽퍽하게 과조리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조리 문법 아닐까? 그렇기에 구멍 뚫린 화로나 석쇠에 올려 직화로 굽는 방식에 단순한 다양성 이상의 의미를 주기 어렵다. 어떻게든 먹기야 먹겠지만 최선이라는 생각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소위 전통 음식/조리 문법이라고 둘러 놓은 제약의 울타리를 감안하면 불고기에게 최선이란 끓이기와 볶기 사이의 중간지점일 수 밖에 없다. 일단 직화를 피하고 물/육수가 급격한 조리 변화를 막는 완충재 역할을 맡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이렇게 조리한 고기를 정녕 ‘불고기’라 이름 붙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에 끓였으니 ‘물고기’가 더 적합한 건 아닐까?

한편 ‘불고기’는 왜 늘 얇게 저민 고기로만 만들어야 하는지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덩어리 고기에 같은 양념을 해서 직화에 구우면 불고기라 부를 수 없을까? 오히려 적당한 부피와 두께가 직화에 잘 대응하는 한편 겉면에서 양념으로 더 적극적인 캐러멜화가 이루어져서 폭발적인 맛이 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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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정작 분해가 필요해서 직화구이가 어울리지 않는 갈비는 칼집을 내면서까지 직화로 굽는데, 왜 대부분의 한국식 쇠고기 조리 문법은 그럴 필요가 딱히 없는 부위마저도 일단 조각을 내고 시작하는 걸까? 고기를 통으로 익히면 한식이 아니게 되는 걸까? 한식이 한식이어야 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에게 일관적인 기준이 있기는 한 걸까?
IMG_0913 *사족: 쓴 우유병에 물을 담는다거나, 정말 누가 어떻게 손(혹은 입)을 댔는지 모르는 고추장통 같은 건 이제 제에에에에에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