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농원 노른자가 싱싱하고 맛있는 영양란의 끔찍함
‘그래요 미식가 블로거 여러분들은 맛집 찾으세요. 저는 계란이나 부칠게요.’
요즘의 기분이다. 미식이든 맛집이든 뭔지 모르겠고 그냥 계란이라도 좀 맛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특정 제품에게 쌓인 피로함을 몰아 쏟아 내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요즘 몇 개월 동안 브랜드에 상관 없이 이런 계란을 먹어온지라 계기 삼아 글이라도 써야 되겠다.
이마트에서 찾은 이 계란은 상표가 말해주듯 노른자를 강조한다. 그래서 오렌지빛 노른자가 얼핏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지만 빈약한 흰자가 감동을 즉각 깨트려 버린다. 그러니까 계란을 깨자마자 물같이 쏟아져 나오는 묽은 흰자 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계란을 접시에 깬 사진을 올린다. 요리책 등에 종종 이런 사진으로 계란의 상태-혹은 신선도를 설명해준다-제조 혹은 판매 업체에서는 나름 등급 판정 같은 것을 거쳤노라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그런 것들과 상관 없이 대체로 이런 계란은 깨자마자 상태 때문에 입맛이 일단 떨어지도 맛도 대체로 없다. 그나마 딱 한 개 골라서 깐 건데 상태가 좋은 편이다. 이 계란을 사와 먹는 채 일주일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대부분의 흰자가 이렇게 중심부와 주변부를 형성하지 못한 채 줄줄 흘렀다. 기름을 둘러 뜨겁게 달군 팬 위에서도 사정 봐주지 않고 줄줄 흘러내리는 흰자 말이다.
계란의 핵심은 노른자일테고 나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흰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면 노른자가 아무리 좋더라도 의미가 없다. 제과제빵 등의 맥락이 아니라면 대체로 노른자와 흰자를 같이 먹고, 후자가 계란 음식 전체의 ‘바디’를 형성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흰자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구멍 뚫린 국자 등을 써서 조리 전에 걸러내야만 하고, 이는 재료의 손실 또한 의미한다. 대체로 묽은 흰자의 늙은 산란계의 산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아니면 닭의 특히 힘든 여름에 이런 현상이 심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편 그 둘과 더불어 나는 계란의 생산과 포장 사이의 간극이 큰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산란일자가 아닌 등급 판정일자만 기록하는 현재의 판정기준을 전보다 더 회의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과연 산란일자를 명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미식, 맛집 다 필요 없고 계란이라도 좀 먹을만 했으면 좋겠다. 먹을만하지 못한 계란이 하나의 식문화에 어느 만큼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과연 헤아릴 수는 있는 걸까?
*P.S: ‘건강한 엄마닭’이 낳았다는 홍보 문구는 정말 최악이다. 모든 농수산물이 신선함에 방점을 두려 발악을 하는 건 알겠지만 결국 약탈자로서의 인간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음식과 요리 세계에서 뿌리 깊은 여성의 성역할 고정관념까지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판 계란은 대체로 무정란인데 그걸 품는 암탉을 깬 계란 옆에 그려 놓았다니 정말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