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라도의 비빔냉면
요즘 능라도 강남점이 북토크 전 에너지 보충소 역할을 충실하게 해 준 가운데, 연속된 출장과 마감, 독감 백신 등으로 인한 폐인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매운 어제는 비빔냉면을 먹었다. 한국인이라면 매운 양념이니까… 하지만 역시 평양냉면 전문점에서 ‘물’의 대구로 ‘비빔’을 시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1. 양념의 간: 국물과 비슷한 정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대체로 매운맛이 강하고 짠맛은 약한 전형적인 양념이었다. 그래도 섬세한 축에 속한다고 믿는 능라도의 면을 확실히 윽박지른다.
2. 면의 온도: 압출로 면을 뽑자마자 삶은 뒤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뺀다. 가게마다 다르겠지만 능라도의 면은 비빔의 상태로 먹기에는 굉장히 차갑다. 정해진 온도의, 그리고 부피가 많은 국물이 가세해서 전체의 온도를 맞추는 물냉면과 균형을 맞추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3. 수분 혹은 유분: 2와 마찬가지로 물냉면은 삶아 헹궈 물기를 뺀 뒤 국물에 담가서 다시 수분을 보충하는 한편 면 자체도 더 잘 풀어질 수 있다. 능라도, 그리고 대부분 평양냉면 전문점의 비빔냉면은 뭉친 면 위에 양념을 끼얹는 형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식탁에서 잘 비벼지지 않는다. 물냉면이 국물을 붓는 형식으로만 완성된다면 비빔냉면은 주방에서 비빈 상태로 내와야 완성되는 것 아닐까. 부원면옥의 비빔냉면이 맛과 별도로 완성도를 더 갖추었으며, 의정부 전주곰탕의 비빔냉면이 잘 설계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같은 맥락에서 유분 혹은 기름의 개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기름은 면이 엉키는 것을 막아주기도 하지만 양념의 부피를 확보하는 한편 맛의 매개체로서 역할도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이런 종류의 양념이 면의 양에 맞춰 부피를 확보하려면 지방이 필요하다고 믿고 그것이 많은 요리 세계에서 쓰는 방법인데, 한식의 양념은 대체로 장류의 양을 늘린다. 그탓에 맛의 균형이 깨지는 한편 지방의 풍성함이 없으므로 깨진 균형이 한결 더 두드러진다. 한국의 양념치킨은 왜 맛있고 서양에서도 인기를 누릴까?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4. 다른 음식과의 조화: 능라도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평양냉면 전문점은 육수를 빼놓는다면 음식의 간이 강한 편이 아닌데, 그에 비해 양념의 매운맛은 대체로 강하다. 왜 국물의 대구가 매운 맛 위주의 양념인지 고민해야 한다. 같은 장류라면 간장이나 된장은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5. 비빔의 ‘스펙트럼’ 구분: 한식에서 대체 비빔이란 어떤 조리 형식인지 좀 더 명확하게 규정 및 구분할 필요가 있다. ‘비빔’과 ‘버무림’은 다른 조리 문법인가? 그렇다면 차이는 무엇인가? 재료를 섞기 위해 가하는 물리력의 강도에 따라 둘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비빔냉면의 ‘비빔’은 사실 ‘버무림’이 아닐까? 메밀면이 ‘치댐’에 가까운 통상적인 ‘비빔’에 견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