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텍토닉
홍대를 어슬렁거리다가 다음의 자랑스러운 현수막을 발견하고 한식의 텍토닉에 대해 생각했다. ‘텍토닉’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기하학’으로 바꿔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물론 텍토닉과 기하학이 호환 가능한 용어라고는 볼 수 없다. 다만 텍토닉을 말하기 이전에 한식은 기하학부터 좀 고민을 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0. 가장 근본적인 물음. 3차원은 2차원보다 우월한가? 100%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인간 혹은 생물이 살고 있는 환경이 어떤지를 생각해본다면 굳이 아니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1. 그렇다면 음식의 3차원 조형은 2차원 조형보다 우월한가? 식재료가 3차원으로 조형되려면 2차원보다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짠 음식의 세계에서는 일단 식재료 자체의 부피를 확보해야 하며, 단 음식의 세계는 조리에 조형의 과정이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덜 복잡하지만 그만큼 난이도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
2. 한식의 조형은 2차원과 3차원 가운데 어느쪽이 더 우세인가? 나는 2차원이라 생각하지만 각자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겨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3. 한식-좀 더 넓게 보아서 한국 식문화 전체-에서 3차원 조형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특히 짠 음식만 놓고 보았을 때 3차원이 조형이 의미 있는 비율로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 방식은 처음부터 식재료의 덩어리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이미 일정 수준 이상으로 분할된 식재료를 축조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사진의 고기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에서 고기 음식의 조형은 2차원인가 3차원인가? 말하자면 조각을 익혀 덩어리를 만드는가, 아니면 처음부터 덩어리를 익히는가? 만약 전자의 방법이 우월하다면 조각의 크기와 두께 등에는 과연 어떤 패턴이 내재되어 있는가?
4. 위와 같은 조형의 방식, 즉 텍토닉은 비단 형태 뿐만이 아니라 조리의 기본 접근을 포함해 궁극적인 결과물 즉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가?
5. 한편 단 음식의 조형은 어떠한가? 3차원을 기본적으로 추구한다면 과연 어떤 복잡도와 미 등을 목표로 삼는가? 그 과정에서 부피만 확보하는가, 아니면 부피와 동시에 질감도 확보하는가? 떡을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쌀가루를 빚는 떡은 어떤 수준의 조형이 가능한가? 만약 복잡한 조형이 가능하다면 결과물은 재료 전체의 합인가 아니면 그런 결과물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공기 등의 개입을 시도하는가?
6. 한식 전반을 통틀어 2차원 조형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3차원 조형도 짜고 단 음식 통틀어 궁극적으로 부피와 밀도가 일치하는 음식만을 주로 만들어 낸다면, 혹시 이를 ‘소박’이나 ‘단아’ 같은 형용사로 정당화하려 들지는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