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의 품격’과 평론가의 자괴감
7월 둘째 주에 ‘냉면의 품격’ 출간 기념 ‘북토크’가 잡혀 있다. 취재와 집필, 그리고 출간 이후의 반응 등등을 모아서 이야기하는 자리를 계획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 적합한 사안이 아닐 뿐더러 지금이 적절한 시기인 것 같아 이것만은 지금 짚고 넘어가겠다. 알고 보면 처음 꺼내는 이야기도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적어도 5~6년 동안은 주기적으로 꼭 한 번 씩은 이 지겹디 지겨운 동어반복을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 한다. 무엇이냐고? 바로 나의 비평 작업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비방 혹은 오해에 관한, 지극히 불필요한 해명이다.
사진의 종이 쪼가리가 보이는가? 짐작할 수 있겠지만 영수증이다. 꾸준히 먹어왔으므로 웬만한 음식점에 대한 기본적인 인상 및 평가는 항상 시각적인 정보로 머릿속에 담고 있지만, ‘냉면의 품격’에 담은 것 같은 비평문은 그런 수준으로는 쓸 수 없다. 그 토대 위에 세부사항을 얹어야 글이 완성된다. 그래서 또 부지런히 먹었고,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비용은 전부 내가 지출했다. 냉면 한 그릇만 먹는 것도 아니겠지만, 책에 실린 음식점의 숫자만 대강 계산해도 비용을 산출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 내는 수고 전체에 비하면 딱히 부담스럽지도 않다.
이렇게 작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심하면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매체 기사에 딸린 덧글 수준이라면 기분은 나쁘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이 인간은 자기한테 잘 대접한 곳만 잘 써준 모양이네’ 같은 아무말 말이다. 그야말로 너무나 아무말인지라 웃고 넘어갈 수 있다. 아이고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디를 가서도 내가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왔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할 이유도 없는데 무슨 대접이라고 받겠느냐만… 일반인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일반인이 아닌, 업계 종사자들이 근거도 없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특정 인물이나 업소와 이해관계가 있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음해나 비방 수준의 주장도 나오는 모양인데 순수하게 어처구니가 없다.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실무자도 없고,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은 더더욱 없다. 게다가 나는 기본적으로 웬만한 작업에 대해서는 일정 단계를 넘을 때까지, 즉 마무리가 거의 될 때까지 잘 이야기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내가 냉면에 대한 책을 쓰는지, 쫄면에 대한 책을 쓰는지 아는 이가 없었다.
프리랜서 생활 내년이면 십 년이고, 음식 평론가의 딱지를 내걸고 활동한지도 6~7년 이상 되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한 상황에 대해서는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게 있는데, 음식을 평가하듯 나도 글과 책으로 평가를 받는다. 그냥 속편하게 앉아서 이것저것 ‘지적질’이나 하는 게 아니고 다른 구석에서 비슷하게 호평도 또 혹평도 꾸역꾸역 받아 먹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나의 의견에 누군가 100% 동조할 거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로 1%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 ‘냉면의 품격’이든 아니든 읽고 막말로 개허접한 책이라고 악평을 할 수도 있다. 당연히 감정이 상한다. 하지만 모두 이 일에 딸린 가지이므로 당연히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살고 먹고 쓴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참을 수 없는 게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인신공격이다. 이건 뭐 딱히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넘어가자. 두 번째는 위에서 언급한 공정성에 관한 음해 또는 비방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나는 언제나 묻고 싶다. 그래서 당신은 공짜로 얻어 먹는 게 즐거운가? 당신이 조금이라도 음식의 영역에 직업적으로 발을 걸치고 있다면 그 목적이 형동생 친목질해서 공짜밥이나 술 얻어 먹는 즐거움인가? 그 모든 게 빚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가?
다 좋다. 그게 목적이며 즐겁다고 치자. 그럼 세상 모든 사람이 전혀 예외 없이 그런 목적으로 세상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사고 회로의 어딘가에 심각한 손상이 있는 것이다. 은행이나 정선 카지노 채용 비리 등에 대한 뉴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비리이니 척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분노하는가? 공짜밥 얻어 먹는 게 딱히 다를 이유가 있는가?
이렇게 또 간만에 해명도 아닌 해명을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적어도 이 일을 하는 동안에는 주기적으로 이 지리멸렬한 동어반복을 해야만 할 것이다. 내 돈 내고 음식 사먹고 평가하는 이 상황 자체가 너무나도 예외적이며 이상하게 보인다면 그것은 현실의 잘못이지 나의 잘못이 아니다. 이런 일 있을 때마다 늘 말하고 또 말한다. 우리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 이런 일 있을 때마다 자괴감이 깊이 들어서 살 수가 없다. 당신이 사랑하는 냉면집이 나에게 박한 평가를 받는 게 기분이 나쁘면 무시하고 그냥 평소보다 더 열심히 사서 드시라.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족: 한편에서는 ‘이해관계가 있어서 저렇게 평가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반면 한 쪽에서는 ‘이해관계가 없어서 편하게 비평한다‘고 말하고 있고… 제발 한 가지만 하자.
‘좋은 게 좋은거지.’ 하지 않고 뚜렷한 글 언제나 기다리고 있고 고맙습니다.
좋은 비평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번 ‘품격’ 역시 뜻하지 않은 즐거움입니다. 감사합니다.
유명세가 대단한 곳에서 저도 냉면을 먹고 갸우뚱했었는데, 비평을 읽고 공감했고 머릿속이 시원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괴물은 되지 말자 도 공감합니다
멀리서도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응원합다ㅏ
냉면의 품격은 아직 못 읽었네요. 조만간 꼭 읽어보겠습니다. 꾸준히 작업해 주세요. 남들 평가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스스로 떳떳한데.
어제 구매했습니다. 늘 응원합니다.
온라인상이든, 오프라인에서든, 비평의 비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죠.
일반 대중들의 인식이 이정도이니, 책에서 얘기하던 올바른 음식비평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거죠,
비평이 없으니 결국 발전의 여지도 사라지게 되는거고…..
필동면옥 리뷰더러 “부르조아적 거만” 운운하는 것은 코웃음도 가지 않습니다.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하는데, 취재자야말로 그 나름에서 (어느 정도 상당히 육체적인)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고… 주방에서이뤄지는 신성한 노동의 가치 운운하지만, 솔직히 맛집이라는 ‘훈장’을 달고 있는 곳의 업주의 시각에서 노동의 가치 운운하는 것도 웃깁니다. 솔직히 치열하게 노동해서 벌어먹는 사람들이 전혀 치열하지 않은 습관적 조리로 만들어진 음식을 만드는 곳이, 이름값 덕에 고평가돼서, 그 값어치 이상을 내고 제대로 대접받지도 못하고 먹는 것이야 말로 고민해야 할 일이 분명해보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고민을 하는 분이라면 더욱…… 필요 이상의 고평가를 받는 게 현실이라면 ‘지대추구’를 하는 사람인 것이지 존중받을 노동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게다가 “대를 이어 돈을 벌어온” 업주의 소홀함에 대한 비판인데, 착취받는 피고용자도 아니고 더군다나 자본력 강한 곳으로부터 갑질 당한 약소 상공인 얘기도 아니고…
한편 ‘업계에서 일해보면 다 이해가는 요소들이란게 있다’라는 식의 논리는 ‘적폐청산’을 막는 전형적인 논법인 것 같습니다. 답답합니다.
(굳이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글일진데, 전혀 약자의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을 약자로 설정해놓고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이 너무 짜증나서 자꾸 생각이 나니까 이런 생각이 나더랍니다 ^^;;)
공감 드립니다.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 그분들 마음은 잘 모르겠는데 제 주변분들은 이번 책 내용 다들 공감하시더라구요.
마지막 저 링크 글은 정말 대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