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을 떠나보내며
취미 혹은 소일거리로는 14~5년, 일로는 9년째 이짓을 하고 있지만 유난히 쓰기 싫은 글이 있다. 대체로 일단 쓰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내보내지만 드물게 결국 완성시키지 못하고 임시글 보관함을 영영 빠져나가지 못하는 글도 있다. 이 글도 그렇게 한참 묵었다. 소위 ‘국민 음식 만화’라는 ‘식객’ 이야기다.
얼마 전, 고민 끝에 ‘식객’을 떠나보냈다. ‘처분’이라는 단어가 적확하겠지만 지나치게 매몰찬 느낌에 어린 시절의 한 구석을 빚졌던 원로 만화가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도 사람이니까 이런 문제를 놓고 고민한다. 굳이 떠나보낸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일단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데 외적인 요건 탓에 실행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 그 전까지 최대한 짐을 정리하고 줄이는 중이었다. 짐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니 정리의 대상은 거의 언제나 책이다. 게다가 ‘한식의 품격’을 마무리지었으니 참고 서적으로서 역할도 다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정서적으로 힘들기도 했다. 바로 그 정서적인 이유에 이끌려 (또는 휩싸여) 글을 쓴다.
한마디로 ‘식객’을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굉장히 참담하다. 이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비아냥 같은 감정과는 결이 다르다. 참담함의 순도 혹은 진정성을 따질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100%의 참담함이다. 안타까움이라고 해도 되겠다. 착잡함도 있다. 공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에 비해 과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공은 무엇인가? 기록 그 자체이다. 어쨌든 한국의 음식 문화를 기록해서 남겼다. 그 자체만으로 큰 시도이고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에 딸려오는 과가 너무 크다. 한마디로 근대를 벗어나지 못한 한국 식문화의 정서를 정당화 및 고착시키는데 일정 수준 이상의 역할을 했다. ‘이대로도 바람직하고 괜찮다’라는 면죄부를 준다. 그런 가운데 개인화된 식사 문화 발전에 대한 필요를 공동체의 정서로 덮어 버린다거나(한 그릇의 음식을 놓고 숟가락을 담가 가며 나눠 먹기), 손맛과 요리 주체의 성편향 현상 또한 개선, 혹은 최소한 재고가 필요한 요소라고 보지 않는다. 이 자체로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 모든 전개의 원동력인 ‘만트라’가 사실은 가장 큰 문제이다. 바로 ‘한식은 특별하다’라는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그래서 ‘이 좋은 것을 왜 먹지 않으려 드는가/ 츄라이 츄라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그냥 만화의 세계에서만 머문다면 책을 떠나보내는 나의 심정이 이렇게 참담 혹은 착잡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식객’은 만화를 넘어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은 뒤 이제는 일종의 인증 제도 역할을 자행하고 있다. 식객 자체의 상품화는 물론, ‘식객촌’의 등장 말이다.
백번 양보해 ‘식객’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식이 우수한 음식이고, 그 명맥을 만화에서 소개하는 음식점들이 이어가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 외연을 전혀 상관 없는 브랜드, 더 나아가 편의점 PB 상품 등으로 확장한다면 과연 권위가 유지될까? 검색을 해보니 일종의 큐레이션 브랜드 역할을 하는 ‘식객촌’에 대한 분쟁 기사도 나온다. ‘식객’이 표방하는 따뜻함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내가 소위 전통에 집착하는 거의 모든 시도에 품는 불만에서 ‘식객’ 또한 자유롭지 않다. ‘우리 것이 없다’는 컴플렉스에서 출발해 전통을 찾으려고 하고, 그 시도 속에서 인과관계가 맞을 수 없는 일종의 순혈주의를 고집한다. 말하자면 일제강점기를 겪었으니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은 것 같은 결과물은 의식적으로 피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다. 받은 영향은 거부하는 한편 고유함을 자인하며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이 상황을 나는 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나의 기억이 맞다면 ‘일본 음식 만화가 많은 현실에 한국의 음식 만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게 ‘식객’의 출범 계기였다. 전제 자체에 굳이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식객’이 만화와 기록의 영역 안에서만 머물렀다면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 ‘식객촌’이라는 이름 아래 마구잡이로 들어선 음식점의 현실은 대체 어떻게 소화를 시켜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의 맛있음’을 소개 및 기록하려는 시도가 궁극적으로는 맛없음의 고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현실 말이다.
(가치중립적으로)그시절 그 수준이 박제화되어 일종의 바이블화 되었기 때문이겠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는 음식보다도 그 시기의 문화나 시대상이라던가 하는게 고스란히 남아있는 매체로 남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단절되어야할 시대상의 마지막 잔상이라 충분히 불편할 수 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