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의 실패
우유에 대한 뉴스를 볼 때마다 답답하다. 핵심은 어디에서도 ‘우유는 맛으로 먹는 음식’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유가 약인가? 그렇지 않다. 식품이고 그렇다면 선택할 때 맛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어디에서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가 동네북처럼 우유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두들기는 ‘저지 종 도입 고려’의 논의에서조차 관건은 영양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이 우유에 대해 철저하게 실패했다고 믿는다. 일단 우유 자체부터 맛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잘 난 ‘입맛은 주관적’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으므로 일단 접어두겠다. 이렇게 맛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유도 식품이며 맛으로 먹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설사 맛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해도 우유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 김치와 된장찌개, 밥으로 이루어진 한국식 식단에는 우유가 그대로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매우 좁다. 단맛과 고소함, 그리고 지방의 풍성함을 지니고 있으므로 일부 서양식 식단에서 북돋고 보충하면서도 동시에 씻어 내려 주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식품이 우유인데, 한편 현실적으로는 상당 부분 서양화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정적으로는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더라도 다른 음료들이 널린 상황에서 과연 누가, 무슨 이유로 우유를 자발적으로 선택하겠는가? 맛이 아니라면 가망이 없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반 강제에 가까운 우유 단체 급식이 트라우마를 조장한다. 우유는 약이 아니고 학생은 사육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왜 억지로 우유를 먹어야만 하는 걸까? 매체는 우유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 싫다면 학생들의 우유 거부를 비행처럼 그리는 시도를 이제 멈춰야 한다.
한편 업계도 현실을 인식하고 우유의 다른 활로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유는 그 자체로 먹을 수도 있지만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음식의 바탕이 될 수 있다. 우유로 만들 수 있는 유제품이 대체 몇 가지인가? 그 가운데 품질로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수준 높은 것이 존재하는가? 요거트 하나만 놓고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젤라틴과 착향료를 쓰지 않은 제품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그것들은 과연 맛있는가? 아이스크림은? 치즈는?
이도저도 다 아니라면 유당불내증 인구를 위한 락토즈 프리 우유는? 그것도 아니라면 순간 살균을 탈피할 진지한 시도라도 하고 있는가? 탈지분유를 바탕으로 한 환원유 시장이 갈수록 다양해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 모든 시도가 충분치 않다면 대체 무슨 자격으로 어린 학생들이 우유를 먹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걸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유는 약이 아니고 학생은 사육의 대상이 아니다.
락토프리 우유와 저온 살균 우유는 이미 시장에 나와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비가 그렇게 활발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저지 우유는.. 좀 궁금하네요. 저지 밀크로 만든 아이스크림이 이미 시장에서 많이 팔리고 있기 때문인지.. 더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아이스크림들은 그럼 전부 수입한 우유로 만드는 건가요?
학교의 우유급식이 국민적인 우유 트라우마를 조장한다는 말에 백배 공감합니다.
우유는 맛없고, 억지로 먹어야하니 단맛을 첨가하는 편법(?)을 쓰고…..
그러다보니 흰우유는 맛이 없고 억지로 먹어야하는 성장기 보약같이 인식이 되어버린것 같네요.
한국 우유의 맛없음은 집유해서 가공하는 과정의 문제인가요, 젖소 품종의 문제인가요?
맛 좋은 국산 치즈나 버터는 영영 나올 수 없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