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시릴로 – 차마 먹지도 못할 타코

IMG_2755 인터넷을 검색해 찾아간 그곳의 메뉴를 받아 들었는데, 메뉴의 절반 이상이 매운맛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었다. 어쩌라는 거지? 정체불명의 매운맛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으나 전부 피해가자니 고를 것이 없었다. 결국 찾은 게 파히타 타코. 파히타 타코라… 타코 두 개를 먹고 배가 찰 리가 없으니 과카몰리 (아보카도 1개분)과 칩스도 함께 시켰다.

그런데 직원이 주문을 다 받고 주방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과카몰리를 낼 수가 없다는 게 아닌가. 왜? ‘어제 많이 팔아’ 익은 아보카도가 없기 때문이란다. 요즘 말도 탈도 많은 식재료가 아보카도고 귀찮아서 잘 먹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랜만에 밖에서 먹으려고 했던 것인데… 매운맛 일색의 메뉴+미리 말해주지도 못하는 무신경에 예감이 나빠, 추가 메뉴를 시키지 않고 그저 타코만 먹기로 했다.

그리고 타코가 등장했다. 이것은 현실이 된 나쁜 예감. 간을 하지 않은 질긴 고기와 이렇게 볶아서 내기엔 투박한 양파와 파프리카, 그리고 그 모두를 좀 더 불쾌하게 만드는, 두껍고 눅눅한 (생) 토르티아가 형태를 유지하겠답시고 금속 틀 위에 올라 앉아 있었다.

타코를 굳이 이 따위 받침대에 올려서 내야 하는가? 기본적으로는 아니라고 본다. 애초에 격식을 차리는 음식도 아닌데다가, 만약 딱딱한 타코 (hard shell taco)라면 모양이 잡혀 있으므로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아니면 백보 양보해 받침대에 올려 놓고 싶은 그 심정을 이해한다고 치자. 그럼 최소한 타코를 집을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은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받침대의 벽이높은 나머지 손으로 집어 들기가 썩 쉽지 않으니, 과연 이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IMG_2754게다가 이 모든, 쓸데 전혀 없는 번거로움이 소위 생 토르티아 때문일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더더욱 슬퍼졌다. 메뉴에는 ‘MSG를 쓰지 않고 토르티아도 직접 만든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런 음식에 화학조미료를 안 쓰겠답시고 굳은 결심까지 하는 것 같은 태도도 좀 웃기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굳이 토르티아를 만들어 쓰겠다고? 물론 원한다면 토르티아 같은 건 얼마든지 만들어 쓸 수 있다. 그리고 잘 만든 토르티아는 재료에 따라 부드러울 수도, 탄성을 지닐 수도 있고 입에 착착 감기며 타코를 먹는 즐거움을 한층 더 북돋아 줄 수 있기도 하다.

다만 그것도 다른 요소를 일단 잘 갖추고, 거기에 기술적으로 잘 만들었을 때에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저 만들기 위해 만드는 / 만들었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 만드는’ 시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차라리 기성품을 쓰는 편이 훨씬 낫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소위 수제버거 전문점에서 굳이 빵까지 굽는답시고 난리를 치거나 그걸 내세워 더 나은 혹은 순수한 (혹은 최악으로는 착한) 음식을 한답시고 홍보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타퀘리아가 토르티아를 만들 줄 모르거나 만들고 싶지 않아서 안 만드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렇다. 내용물도 제대로 못 만드는 수준인데 굳이 토르티아를 만들고, 그걸 내세워 타코 두 개 한 접시를 9,000원에 판다. 한 입 먹어보니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럴싸한 비평적 언어를 너무나도 쓰고 싶지만 그저 ‘기가 막힌다’는 표현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배가 고팠던 참이라 그래도 참고 먹으려다가, 먹어도 안 먹어도 기분이 나쁠 거라면 차라리 먹지 않는 편이 그나마 덜 기분 나쁠 거라는 생각에 일어섰다.

못 만든 음식에도 무수한 결이 있고, 그에 따라 부정적인 평가도 수 없이 갈린다. 어떻게 못 만든 음식이 최악 가운데 최악인가? 생각이 전혀 없으나 마치 깊은 생각의 산물인 양 가식을 떠는 음식이 최악이다. 차마 먹지도 못할 이 타코가 그러했으며, 나는 이런 음식을 먹느니 돈을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다 생각하고 끼니를 건너 뛰겠다.

4 Responses

  1. jieunshin630@nate.com says:

    저 몇년 전에 이태원인가 한남동에서 아삭아삭한 아보카도를 서빙 받아본 적도 있어요..

  2. 안준표 says:

    시일야방성대곡 수준의 분노가 느껴지는 리뷰입니다. 부작용으로 마쭈아깐 스타일의 타코를 파는 비야게레로에서 맥주와 타코를 먹고 싶어졌네요. 하지만.. 너무나 멀고먼 비야게레로. 그나저나.. 아직도 영업은 하고 있을지?? 걱정이네요. 대충 검색해보니..성업중인 것 같기는 한데.

  3. 나녹 says:

    메뉴판 디자인이 Shake Shack 카피네요. 폰트까지 비슷..

  1. 03/28/2018

    […] 먹으며 그 얼마 전에 먹었던, 아니 도저히 먹을 수 없어 놓고 나온 타코에 대해서 생각했다. ‘온 더 보더’에는 ‘어쩌다가’ 갔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