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오므라이스

IMG_2528몇 번이고 가려했던 곳이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굳이 짜내야 한다면 오래 묵은 것의 실체를 파악하고 싶었달까? 몇 번은 동선이 맞지 않았고, 한 번은 영업이 끝난 이후의 시각이었다. 점심시간의 한가운데에 마침내 문을 열고 그곳에 발을 들였을때, 나는 바로 슬퍼졌다. 낡다고 반드시 지저분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곳은 낡고 또 그래서 지저분했다. 어쨌든 오므라이스를 주문했다. 주방의 60대로 보이는 여성이 밥통에서 밥을 접시에 담아 주방에 건네고, 30대쯤으로 보이는 남성이 조리한다.

그리하여 오므라이스가 등장했을때, 오믈렛의 터진 틈으로 바로 눈길이 갔다. 이곳부터 먹으라는 의미인가? 숟가락을 찔러 밥을 떴는데, 끝에서 털이 보였다. 머리칼은 아니고, 짧은 것이 아무래도 눈썹 같았다. 나는 그것을 말없이 60대 여성에게 내밀었고, 그는 접시를 거둬 주방의 30대 남성에게 건넸다.

IMG_2529 잠시 망설였다. 그냥 일어날까? 평소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일 때문에 다른 선택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배가 제법 고팠고, 여느때처럼 다른 점심거리를 찾아 헤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나온 오므라이스는 또 다른 곳이 터져 있었다. 이번에도 그쪽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너무 뜨거워서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먹는 이가 이것을 앞에 두고 일정 수준 식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음식도 있고 사람도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너무 뜨겁게 나왔는데, 음식이 식을 때까지 이야기라도 나누시죠. 그러나 혼자라면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뜨거움을 무릅쓰고 조금씩 먹었다. 마지막 세 숟가락 쯤이 남았을 무렵에야 뜨거움이 완전히 가시고 오므라이스의 원래 맛이 드러났다. 더도덜도 아닌 케첩의 신맛이었다. 1952년에는 맛있다고 느낄 수 있었을까? 묵은 것의 실체는 그저 묵은 것을 뿐이었다. 예상대로 60대 여성은 돈을 받지 않았다. 맛이 없는 식사가 반드시 슬픈 식사는 아닌데 어떤 맛없는 식사는 정말 슬프다. 이런 오므라이스가 그렇다. 맛없기를 원하지 않는데 결국은 맛없어 지는 운명을 피할 수 없어 슬프기 짝이 없는 음식이다.

2 Responses

  1. ㅇㅇ says: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적정온도의 중요성을 빈번히 언급하시는데
    한국에서 음식을 비평하시니 이미 인지하고 계실거라 생각하긴 합니다만..
    한국에서 음식을 만들며 적정온도를 맞추기란 쉽지 않습니다.
    몸이 데일정도의 온탕온도를 “시원하다”
    혀가 데이고 천장이 일어날 국온도도
    “시원하다” 생각하는것이 통념이고..
    비단 그것은 한식에만 적용되는것이 아니라
    커피,차,파스타,돈까스,튀김 막론하고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먹기에 적정한,각 음식에 걸맞는
    온도라는 것을 감안하여 손님에게 낼 경우
    덜 데워졌다.덜 익혔다.다 식었다.등의
    클레임이 발생할 확률이 굉장히 높으며
    말이 없는 경우라도
    조용히 욕을 하거나,sns에 욕을 하는 경우가
    십중팔구입니다.
    중심온도75도의 돈까스를 차가워서 못 먹겠다고 돈을 지불하겠노라 주장하는 경우도 목격한바 있습니다.(클레임후,주방장이 온도계를 가져와 중심온도를 쟀을때 75도였음)
    비평을 하시는데 적정온도를 자주 강조하시는것이 이런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래 봅니다만..
    공중파 방송에서 활동하시지 않는한
    요원한 일이겠지요.ㅠㅠ

  2. ㅇㅇ says:

    입력이 잘못 되었네요.수정이 안 되어
    사족을 한번 더 달면
    결국 윗 댓글에 언급된 서빙받은지 5분 가까이 되었음에도 중심온도75도를 유지한
    돈까스는 정당한 댓가를 지불받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