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SF 베이글-의미 없는 사워도우
‘베이글이 좀 ‘새콤’하니까…’라는 이야기를 두 번이나 듣고서야 계산까지 마칠 수 있었다. 지인과 저녁 약속이 있어 연남동에 갔는데, 시간이 좀 남아 골목을 둘러보던 차 눈에 들어온 가게였다. 마침 베이글이 먹고 싶었던지라 들어가보았다. 자연발효종으로 만드는 베이글이라고 했다. 그런데 자연발효종이 ‘새콤’한가? 굳이 구분한다면 ‘새콤’은 레몬즙 같은, 숙성을 거치지 않고 나온 산의 가벼울 수 있는 신맛에 더 잘 어울리는 형용사다. 자연발효종이라면 ‘시큼’이 더 잘 어울린다. ‘새콤한 베이글’이라니. 유독 맥락에 안 맞는 단어가 자꾸 튀어나온다는 느낌에 설명을 듣다가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고 베이글은 정말 시큼했다. 베이글이라는 빵이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 샌프란시스코의 사워도우가 유명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빵을 사워도우 바탕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게다가 베이글은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빵이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딱히 유명하지도 않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의 이름과 사워도우를 빌어다가 만드는 베이글이라니,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건 만드는 이의 마음이다. 사워도우로 굳이 베이글을 만들고 싶으면 만들면 그만이다. 실제로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사워도우 베이글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나는 다만 이런 시도가 1. 큰 의미 없는 개성 불어 넣기-차별화와 2. 완성도를 보장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기본을 건너 뛰는 시도 같아서 썩 반갑지 않다. ‘한식의 품격’에서 언급했듯 ‘요리를 채 이해하기도 전에 장을 직접 담그는 시도’ 같다. 달리 말해 기성품 효모로 베이글을 잘 만들고 나서 다음 단계로, 굳이 원한다면 자연발효종을 쓰는 게 수순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물론 맛의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자연발효종으로 끌어낸 이 정도의 신맛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곁들이는 크림치즈의 신맛과 불필요하게 겹칠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연발효종이 더 우월한 수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도 않고 모든 경우에 어울리지도 않는다. 최근 샌프란시스코의 타르틴이 서울에 매장을 냈는데, 빵이 그 정도의 신맛을 지니고 있다면 모든 맥락에 바탕으로 쓰기는 어렵다 (참고로 이 베이글의 신맛은 타르틴의 그것과 막상막하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적절하고 다양한 대량생산품의 저변 없이 마구 깔리는 소규모 생산-작은 가게의 현실에 환멸을 느낀다. 대량생산품에 비해 나을 구석이 별로 없는 제품을 단지 개인이 소량 생산한다는 이유로 비싸게 사야한다면, 절대적인 가치로는 부담이 되지 않겠지만 상대적으로는 불만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프랜차이즈가 음식 문화를 황폐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는 언제나 쉬운 일이지만, 실제로는 다르지 않은데 다를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지갑을 열게 만드는 소규모 업체가 황폐함에 결정타를 날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많은 프랜차이즈의 실제 점주는 모두가 좋아하는 ‘서민’이거나 ‘중산층’이다.
*사족: 포장지에는 ‘소규모 생산(small batch)’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 발효빵이 아닌 파운드 케이크등도 여러 종류 팔고 있었으므로 정확히 그런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인지 모르겠다. 베이글처럼 고전적인 빵이라면 전문성은 품목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획득할 수 있다고 본다. ‘베이커리’인데 베이글도 파는 것과 상호에 ‘베이글’을 내걸고 다른 빵을 파는 상황은 다르다.
*사족 2: 사진은 없지만 시나몬롤(4,000원)도 먹었는데 베이글 만큼이나 별 매력이 없었다.